2D/HQ

[히카게리에] 청춘의 삼각형

톨쟌 2016. 7. 14. 17:51



 

*2학년이 된 후의 여름 합숙에서의 이야기.



히나타 쇼요x카게야마 토비오x하이바 리에프

청춘의 삼각형



히나타가 2학년이 되던 해의 여름 합숙은 또다시 도쿄에서 이루어졌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공은 통통. 도쿄의 뜨거운 기온 속에서도 모두들 최선을 다해 연습을 했고 연습이 끝난 늦은 오후에는 뒷동산에 앉아 다같이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하던 합숙임에도 불구하고 히나타는 이상하게 며칠째 연습에 집중할 수 없었다. 히나타 멍청아, 어딜 보는 거야! 몇 번이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를 꾸짖었지만 히나타는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더 정신을 놓아버리는 듯 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후배들마저 수군대고 있었다.

 

하지만 히나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뒷동산에 반쯤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히나타의 머릿속에는 벌써 며칠째 누군가의 생각이 그득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파란 눈동자가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면, 관리가 잘 된 섬세한 손이 공을 올리고히나타, 하고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부터, 멍청아! 하고 짜증을 내는 소리까지 온종일 환청처럼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주인공은 도저히 제 머리를 잠식할 만한 인물로는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히나타는 끝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러나 생각을 채 잇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로 그늘이 지고 귓가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히나타, 너네 세터…”

, 갑자기 걔 얘기는 왜 꺼내?”

 

제 생각을 온통 들켜버린 것 같아 히나타는 괜히 큰 소리를 쳤다. 리에프는 이상하게 화를 내는 듯한 히나타의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은빛 뒷머리를 슬슬 긁는 모양에서 이유를 모를 부끄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히나타는 문득 불안해지는 마음에 고개를 올려 리에프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묘한 두근거림이 일렁이는 초록빛 사이에서 히나타는 문득 기분이 나빠져 리에프의 말을 막고 싶어졌지만, 리에프 쪽이 한 수 빨랐다.

 

애인 있어?”

 

터엉, 하고 무언가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히나타는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애인? 카게야마가 애인? 그러게, 카게야마가 애인이 있던가? 그런 걸 만들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아니, 일단 그런 걸 왜 물어보지? 온갖 생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이 흐트러지자 히나타는 털어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 그러니까, 그러니까주절주절 알 수 없는 말들만 내던 입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다른 소리를 내었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날이 선 투로 뱉어내자 리에프는 일순간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틈을 타 몸을 일으키고는 발을 쿵쿵대며 체육관 쪽으로 난폭하게 걸어가버리는 히나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리에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저러지? 히나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혼란스러워 하던 리에프는 결국 푸욱 한숨만 내쉬며 다짐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그는 물을 들이키는 새카만 뒤통수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 있잖아

 

애인?”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카게야마가 리에프에게 되물었다. 왠지 수줍어하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는 리에프의 앞에서 카게야마는 파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애인, 애인이라. 그러고 보니 반 아이들은 요즘 한창 그런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이리저리 시시덕거리기는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애인을 만들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리에프의 질문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나저나 키 한번 크네, 우리 팀 누구하고는 다르게. 문득 히나타를 떠올리던 카게야마는 이내 리에프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아니, 없는데. 그러자 리에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게 피어올랐다.

 

말해줘서 고마워,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몇 번 더 끄덕여 주었다. 내 이름, 알고 있네. 네코마 쪽으로 멀어지는 리에프의 등을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네 이름 알고 있네.”

 

왠지 모르게 화가 나 보이는 히나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돌렸다. 앉아 있는 저보다 서 있는 히나타가 컸으니 자연히 얼굴을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태양을 등진 얼굴에 그림자가 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 머리 식히러, 좀 뛰다가 수돗가. 카게야마가 덤덤하게 던진 물음에 대답하며 히나타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무슨 일 있냐?”

 

히나타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카게야마는 또다시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며칠 동안 왜 이렇게 집중을 하지 못하냐며 카게야마에게 된통 혼나오던 참이었기에 히나타는 웬일로 무덤덤한 그의 말투가 놀랍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의 질문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는 생각에 잠겼다. , 이걸 얘기 해야 해? 그러나 어쩌면 카게야마라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히나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자꾸 누구 생각이 나.”

 

예전에는 좀 사이도 안 좋던 사람인데, 요즘엔 계속 생각이 나. 앞에 없으면 보고싶고, 앞에 있어도 보고싶고. 그 대상이 지금 제 눈 앞에 앉아있다는 말만 쏙 빼놓은 채 히나타가 제 고민을 털어놓았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히나타를 바라보다가 불쑥 내뱉었다. ,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 의외인 말이었기에 히나타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 , 무슨 소리야! 당황한 마음에 말을 계속 버벅이자 카게야마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들어보니까, 누구 좋아하는 거네. 아니야?”

 

사실 카게야마 본인도 반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몇 번 주워들은 것이 전부였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저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거든? 뒤늦게 박박 화를 내듯 소리를 치며 부정하는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랬어, 하는 말을 뱉고는 뿌듯함에 잠겼다. 내가 이 정도도 모를 줄 알고? 의기양양한 마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이상하게 먹구름이 끼는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왜 히나타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데 내 기분이 나빠지지? 카게야마의 눈치로는 아직 미약한 그 감정을 알아채기 어려웠기에 그는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며 물을 들이켰다. 히나타는 갑자기 굳은 표정이 된 카게야마가 또 무슨 잔소리를 늘어놓을 지, 아니면 어떻게 저를 추궁할 지 조금 무서워져 리에프와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에프?”

, 네코마의 키 큰…”

 

, 하는 소리와 함께 카게야마의 표정이 풀리자 히나타는 질투심 비슷한 것에 사로잡혔다. 왜 리에프 얘기가 나오니까 표정이 피지? 정작 카게야마는 아까의 그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곰곰히 생각에 잠긴 표정의 카게야마를 뒤로 하고 리에프에게로 저벅저벅 걸어간 히나타는 여느 때처럼 네코마에서 구박 비슷한 것을 당하고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리에프, 할 말이 있는데.

 

무슨 할 말이야?”

 

체육관 반대편으로 걸어간 두 사람은 이내 마주 보고 섰다. 여전히 어딘가 잔뜩 화가 나 보이는 히나타의 모습에 리에프는 또다시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히나타는 그런 리에프의 초록빛 눈동자를 올려다보다가 매섭게 말했다.

 

, 카게야마 좋아하지.”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라 카게야마에 대한 제 마음을 얼떨결에 털어놓아버린 리에프는 이내 히나타의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히나타가 저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보다 체격도 키도 훨씬 큰 저도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런 서늘함이 강하게 들었다. 움찔하는 리에프에게 히나타가 선전포고를 하듯 무겁게 말했다.

 

나도 카게야마 좋아해.”

 

그리고 난 카게야마가 날 좋아하게 만들거야. 당당하게 말하는 히나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도 묻어나지 않았다. 리에프는 그런 히나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 뭘 웃어! 빽빽 소리를 지르는 히나타에게 리에프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 좋았어.

 

나도 카게야마가 날 좋아하게 만들 테니까. 긴장해, 히나타.”

 

덧붙이는 말에는 역시나 딱히 근거는 없지만 당당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럼 나는 이만, 아까 팀이랑 이야기하던 게 있어서 말이야. 멀어지는 리에프의 뒤를 바라보며 히나타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하필 저 녀석이랑 좋아하는 사람이 겹칠 게 뭐람. 억울하다는 마음에 씩씩대던 그의 머릿속에 제가 뒤에 남겨두고 온 카게야마가 떠올랐다. 얼른 가서내 걸로 만들어야지. 당차게 걸어가는 발걸음에는 결의가 넘쳤다.

 

정작 카게야마는 히나타가 리에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취향 특이하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순간 이유 없이 목이 타 또다시 물을 넘겼다. 청춘의 삼각형은 여름을 타고 재미있는 모양으로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