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D/HP

[시리무] 암흑과 빛과 살해에 대하여

톨쟌 2017. 2. 5. 20:03



암흑과 빛과 살해에 대하여



그의 생은 암흑에서 비롯되었다. 깜박이는 촛불 아래서 한밤중에 느닷없이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제 생과 어미의 생을 맞바꾸었다. 아이의 눈이 처음 본 세상은 눈부신 빛 대신 침침한 어둠이었고 마음이 처음 접한 것은 삶이라기보다 죽음이었다. 일곱 살 차이의 손윗누이가 죽은 어미와 무능한 아비의 역할을 모두 맡았다. 누이의 등에 업혀 걸음마보다 구걸을 먼저 배운 아이는 연약한 몸으로 위험 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생의 위기를 수없이 겪었으나 기적처럼 생존했다. 너는 나의 기적이자 빛이야, 속삭이는 누이의 목소리에 의문을 품게 될 무렵 아이는 소년이 되었다. 어두컴컴한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빛이란 단지 동경의 대상이었으므로 소년은 누이의 말에 자주 혼란을 느꼈다. 감히 제가 기적이며 빛과 같은 말과 엮인다는 것이 죄악과도 같이 여겨졌다. 자그마한 창문으로 들어 방바닥에 자욱을 남기는 햇빛마저도 피하는 제가, 더없이 흑색인 어둠 속에서 기원한 제가 어찌 감히. 그저 그림자가 지는 곳으로만 걷는 삶은 도무지 그러한 말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온전한 빛의 한가운데로 문득 뛰어들고 싶은 날들도 있었다. 그 안에 있으면 저도 빛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그 눈부심에 제가 타들어가 소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순간들에 그는 허름한 옷을 부여잡고 스스로를 막아세웠다. 허무맹랑한 생각임을 내심 알았던 동시에 제 누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나의 기적, 나의 빛이야. 숨소리처럼 울리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던 감각이 지독히도 선명해 그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차마 이어갈 수 없었다. 다만 또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또 살아갈 따름이었다.


손이 뻗어진 것은 그 즈음이었다. 얘야, 일을 해 보고 싶지 않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가 다정히 말을 건네오는 것에 그는 반사적으로 경계를 표했다. 사내의 눈이 잠시 날카롭게 빛나다 다시 수그러들어 곡선을 그렸다. 나와 가자, 네게 새로운 삶을 줄게. 웃으며 하는 말은 따스했다. 경계심은 여전했지만 설렘은 어쩔 수 없었다. 차오르는 희망에 소년은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사내에게 고정된 시선은 먹먹한 고통을 수반했다. 눈이 멀 것 같은 감각이 더없이 어두운 암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더없이 밝은 빛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실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것을 그토록 바라고 동경하던 빛이라고 믿기로 작정했다. 제 삶의 구원이라 여기며 잡은 손은 제법 억셌다. 그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을 직감했으나 순응했다. 


뒷골목의 살인귀, 밤의 늑대는 그렇게 태어났다.


삼 년을 죽은 것 마냥 지냈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깜박이는 백열등에만 의존해 온갖 훈련을 받았다. 맨몸으로 싸우는 법부터 총을 다루는 방법까지, 사람을 죽이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 그러는 동안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마침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이 스스로도 무서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의연해지기까지는 역시 시간이 걸리지. 괜찮다, 잘했어. 온몸을 벌벌 떨며 울음조차 뱉지 못하는 그에게 사내는 예의 그 다정한 미소를 보내었다. 사체를 처리하는 방법과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 법을 익힐 때까지 수십의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조금씩 제가 이 일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처음으로 받은 의뢰금을 세며 깔끔하게 미련을 지웠다. 너는 이 일을 위해 태어난 것 같구나, 재능이 있어. 사내의 칭찬에 미소를 띄울 만큼 그는 점점 무던해졌다. 자극이 없는 삶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또 다른 의뢰가 들어왔고 그는 총을, 때로는 칼을 들었다.


그러다가 마주한 것이 그 이름이었다. 처음부터 불길하다는 것을 예감했어야 했는데, 더없이 어리석었던 저를 원망하던 때에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별의 이름을 가진 남자는 현재 국가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총수의 손자였다. 간혹 신문이며 잡지에 얼굴을 비출 때면 도무지 웃는 낯이 없었으나 상당한 미남이었기에 주목을 받았다. 알려진 것 하나 없는 미지의 인물이었지만 원한관계에 얽히지 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기업을 노린 범죄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리무스 루핀은 시리우스 블랙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더없이 평온한 얼굴로 그것을 수락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대를 처치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다. 평소 행로며 거주지조차 알지 못했다. 뒷세계의 정보 암시장에서도 시리우스 블랙에 관련된 정보만큼은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머리를 조금 굴려야 할 때였다. 리무스는 턱을 괴고 신문 기사에 포착된 시리우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미남이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의 미남이라는 생각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는데. 둥그런 눈동자에 순간 날선 빛이 스쳤다. 그렇게 하면, 그 쪽도 넘어오지 않을까. 그는 마침내 생각해낸 묘책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조금 더러운 손도 빌려야 했고, 뻔뻔하게 연기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더럽기로 따지면 제 손도 만만치 않았고, 연기력이야말로 청부살인업자가 당연히 지녀야 할 능력이 아니던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니나 하는 말마다 유려한 것이 리무스 루핀이었고 그는 그렇게 몇 명의 조력자를 얻었다. 블랙 사의 경호원 선발은 원체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약간의 도움과 적당량의 금품이 있다면 밑바닥 자리를 얻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새카만 수트를 차려 입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든 총은 어쩐지 조금 무거운 듯도 싶었지만 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신경이 집중된 것은 오직 하나였으니.


잠입 아닌 잠입을 해냈으나 기실 가장 어려운 일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비밀에 싸인 표적은 도무지 제 앞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시리우스 도련님은 회사에는 잘 오지 않으시나 봐요, 은근슬쩍 선임에게 물어도 퉁명스럽게 나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자주 안 오는 것도 문제지만, 와도 우리는 못 봐. 그 말에 리무스는 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좀 더 올라가야 하는, 그런 거지? 웃음에 서린 감정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명백히 기쁨은 아니었다. 이 정도 난이도의 일이라면, 보수를 몇 배는 더 받아야 하겠는데. 속으로 되뇌이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표적이 제게 오지 않는다면 제가 표적에게로 가면 된다. 일종의 결연한 다짐 비슷한 것을 하며 그는 주먹을 세게 꾸욱 쥐었다.


또 한 번, 연극을 펼칠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고액의 보수를 지급해가며 고용한 가짜 킬러는 블랙 사의 신년 행사에 얼굴을 비친 오리온 블랙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고령의 회장을 대신해 기업을 경영해가는, 블랙 사의 실질적 소유주였기에 한 번쯤 저격을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할 리 없었다. 물론 마침 근처에 있던 말단 경호원이 순식간에 몸을 던져 탄환을 대신 맞은 상황도 제법 그럴싸했다. 모든 것이 리무스가 짜놓은 판도대로 돌아갔다. 용감하고 헌신적이며 잽싼 경호원이 부상까지 감수해가며 사주를 지켜냈다는 번지르르한 사실은 오리온이 리무스의 병실을 직접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리무스는 단지 초연하면서도 따스한 인상을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진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건의 발생이며 이후의 흐름 같은 것들은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으므로 리무스는 제법 뿌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친 것은, 칼날 같은 회색의 눈빛.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사주의 가족들과도 그럭저럭 가까워지지 않을 수 없는 자리까지 올라간 후에도 시리우스만큼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블랙 가의 불화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고 시리우스의 방황하는 걸음은 밖으로만 나설 뿐이었다. 한 번쯤은 올 수 있지 않겠느냐며 수화기에 대고 엄하게 꾸짖는 오리온의 모습을 보면 그 상대가 시리우스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리무스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혹시 그가, 그가 정말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생각이 들면 애써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가슴 한 구석이 불안으로 쨍하게 얼어붙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은 점차 위태로워졌으며 그는 간혹 의미 없이 손을 떨었다. 의뢰자가 언급했던 기한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꼼작없이 선금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다. 이 고생을 해가면서 실패한다면 그만큼 화가 나는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혼자 결의를 다지는 리무스의 등 뒤로 지는 그림자는 의외의 것이었으나 동시에 반가운 존재였다.


“뭘 그렇게 서 있냐.”


삐딱한 반말이 튀어나왔다. 리무스는 뒤를 돌아 상대를 확인하고는 큰 숨을 급히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시리우스 블랙, 하고 소리를 칠 뻔 했지만 이성이 간신히 발목을 잡았다. 시리우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는 인사에 시리우스는 뒷머리를 슬슬 긁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는데. 머쓱해하는 모습에 리무스는 순간 영 이상한 생각을 하고 말았지만 순식간에 그만두고 대신 시리우스의 얼굴을 조심스레 뜯어보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한 미남이었다. 고풍스러운 조각품을 가져다 놓은 듯 완벽했다. 리무스는 잠깐, 아주 잠깐 그의 목숨을 앗아야 하는 것이 아쉬워졌다. 이런 얼굴을 하고, 그런 의뢰의 표적이 되다니,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이 시리우스의 얼굴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리무스는 작게 어깨를 들썩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도망하는 리무스의 뒷모습에 대고 시리우스가 무어라 소리를 쳤지만 이미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실은 꽤나 충격이었다. 나름 인정받는 킬러인 제가 평정심을 잃게 만들다니. 자리를 피하고도 세차게 뛰는 심장이 거슬렸다. 잘생겼다는 생각은 물론이요, 심지어 순간적으로 의뢰를 거절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차는 증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자신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안 돼, 리무스 루핀. 정신 차려. 저 인간은 네 표적이야. 제가 벌어온 돈으로 제법 괜찮은 삶을 꾸려가는 중인 누이가 순간 눈앞을 스쳤고 그와 동시에 마음이 차게 가라앉았다. 리무스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스트레칭을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였다. 저건 표적이야, 네가 호감을 품을 대상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에 적은 문장이 저를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리무스는 심호흡을 했다.


그는 그러한 시도들이 헛것이 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시리우스 블랙을 또다시 조우하게 되기 전 까지는.


“또 보네?”


저번에 그 도망가던 걔 맞지, 너. 묻는 말에 리무스는 조심스러운 척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우스는 작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머리에 뭐 묻었다. 뻔한 수법으로 다가오는 것이 불길했다. 리무스는 조금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네가 나를 챙겨야지, 내가 널 챙기고 있으면 어떡해. 중얼거리는 말은 다분히 호의를 담고 있어서 리무스는 또 조금 불안해져버리고 말았다. 암흑과 빛이 공존하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알기 쉬웠으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회사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유독 제 주위를 맴도는 것도 충분히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으나 리무스는 그 뒤의 의중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계산이 없는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가장 두려웠다. 제게 품은 것이 다만 온전한 호감이라는 가설만큼 최악인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소름이 끼치는 것은 제가 그 마음에 동조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그는 어둠의 탈을 뒤집어쓴 빛인 동시에 거액의 금액이 달려 있는 표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곱씹고 또 곱씹었다. 차분히 그를 살해할 기회를 노리면서도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마음은 어느 밤 마침내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늘상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이 전부였던 시리우스를 회사 뒤의 공원에서 마주친 것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그 모든 것이 시리우스의 의도에 따른 것임을 리무스는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잠깐 얘기 좀 할까? 제법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시리우스의 모습은 머리가 띵하게 울릴 정도로 의외의 것이었고 동시에 자극적인 모양이었다.


“네가 좀,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이런 말은 너무 부담스러울까. 답지 않게 수줍음이 묻은 말투에 리무스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생각보다 무거운 감정인 듯 싶었다. 그는 잠시 손을 혼자 바르작대다가 애처로운 눈으로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받아줄 수 없다고 말하려는 거야? 비에 흠씬 젖은 개가 떠오르는 어조였다. 제법 처량했고 동시에 미련이 축축했다. 리무스 루핀은 그래서, 차마 그가 곧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제가 될 것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 기회가 찾아온 날이 오늘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그는 도무지 털어놓을 수 없었다.


소음기를 단 총은 총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정확히 왼쪽 가슴을 겨냥해 날아간 탄환은 심장을 꿰뚫었다. 새빨간 피가 튀겼다. 시리우스의 눈이 충격으로 둥글게 커졌다. 벌어진 입이 몇 번 뻐끔거렸으나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는 몸 때문에 모양을 알아볼 수 없었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등을 대고 쓰러진 시리우스를 바라보며 리무스는 또 한 번, 조금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소멸하기 직전의 빛만큼 아름다운 것은 무엇도 없다고, 도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의 이름을 가진 사내의 생명의 빛이 깜박거렸다. 리무스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 고인 이유 모를 눈물이 조금 반짝였다. 역시, 이럴 때에 사랑의 도피를 하는 전개는 나와 어울리지 않지. 작게 중얼거리면서 아직 죽지 않은 회색의 눈을 바라보았다. 함께 죽는다는 선택지도 없어, 나는 그렇게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서. 쪼그리고 앉아 시리우스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리무스는 하얗고 둥그런 이마에 슬쩍 입을 맞추었다. 나는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손을 뻗어 흘러내린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생의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숨소리가 멎자 리무스는 눈꺼풀 위에 손을 얹어 탁한 회색빛을 가렸다.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을만한 삶을 살게 된다면,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네.”


마지막으로 속삭이는 말은 조금 잔혹했으나 지독하게 아름다워서, 리무스는 조금 눈물을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