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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HQ

[오이카게] 데이...트?

오이카게 전력 60분 8회차 참여했습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배구에 한해서는 천재였다.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 끈질긴 의지와 뜨거운 열정을 모두 갖춘 이 천재 세터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배구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놀라울 만큼 부족한 것이 많았다. 학교 공부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일상 생활에서든 평범한 사람 수준, 혹은 그 이하인 카게야마가 ‘배구밖에 모르는 바보' 와 같은 호칭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배구 천재’ 이자 ‘배구 바보'인 카게야마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눈치가 없을 수 있지?’


   눈치였다.




[오이카게] 데이...트?




   카게야마가 눈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카라스노 배구부원 모두가 익히 경험해 알고 있었다. 돌직구로 내리꽂는 말이 아니면 하려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카게야마와 함께 보낸 지난 몇 달간 몸소 깨달았지만, 사실 그들이 경험한 카게야마 토비오의 ‘눈치 없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에야 서서히 알아가고 있는 카라스노 배구부원들은, 카게야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정말 사람이 이 정도로 눈치가 없는 게 가능할까?


   그러니까, 발단은 카게야마가 연습이 끝나고 핸드폰을 집어들어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히나타가 목격한 것이었다.


   “뭐야, 카게야마! 누구랑 연락하는거야? 설마 여학생?”

   “시끄러워, 멍청아.”


   카게야마가 누군가와 어떤 수단으로든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것은, 그것도 연습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을 주워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여느 때처럼 히나타는 넘치는 에너지로 방방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었다. 말도 안 되는 비약에 어이가 없어진 카게야마는 평소처럼 툭 쏘아붙이듯 대답을 건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히나타의 큰 목소리는 이미 다른 부원들의 귀에 들어가버린 후였고, 단세포 선배를 맡고 있는 니시노야와 타나카에게 놀림에 있어서 무언가의 사실 여부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뭐, 카게야마가 여학생이랑 연락을 한다고오-?”

   “이거 이거, 중학교 졸업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 벌써부터 연애를?”


   슬금슬금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며 능글맞은 대사를 내뱉는 니시노야와 타나카를 보며 히나타는 킥킥대며 웃었다. 당황했다는 말을 써다 붙인 것 같은 카게야마의 흙빛 얼굴은 누가 봐도 우스울만 했다. 찔끔찔끔 시선을 피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를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던 카게야마를 보며, 두 선배들의 장난기는 점차 의심으로 변했다. 이 녀석, 평소라면 발끈하면서 당장 아니라고 종알거렸을 텐데, 왜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마냥 눈만 피하지?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카게야마에게 거의 동시에 물었다.


   “설마, 진짜로 여학생이랑...?”

   “아, 아닙니다!”


   그제야 눈이 동그래져서는 손사래까지 저어 가며 아니라고 다급히 부인하는 카게야마를, 니시노야와 타나카, 그리고 히나타까지 합류한 무리가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는데, 설마 카게야마 토비오가 정말...? 세 사람의 머리는 그동안 카게야마가 여학생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특별히 잘 대해주는 여학생이 있었던지, 혹은 무려 고백이라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떠올려보며 그동안의 기억들을 빠르게 탐색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말 한 마디 없이, 오직 불타오르는 눈빛만 보내며 저를 바라보는 것에 당황한 카게야마는 시선을 떨구며 입을 삐쭉거렸다.


   “...여학생이 아니라, 오이카와씨예요.”

   “뭐?”

   “세이죠의?”

   “대왕님?”


   카게야마가 말할 ‘오이카와씨’는 아오바죠사이 배구부 주장인 오이카와 토오루 뿐이었기에, 세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밟아주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무시무시한 선언을 했던 바가 있었고, 카게야마 역시 오이카와에게 그닥 좋은 감정을 가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셋이 보기에는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실 그닥 살갑고 다정한 내용일 것 같지는 않지만, 하여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라니?


   “네, 뭐. 어제 오이카와씨 집에 뭘 두고 와서요.”

   “잠깐, 잠깐. 그러니까 카게야마, 대왕님이랑 집도 서로 오가는 사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게야마의 답변에 사색이 된 히나타가 재빠르게 묻자, 카게야마는 오히려 그게 뭐가 어떻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열린 입에서 나온 카게야마의 한 마디에, 세 사람은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아니면 카게야마의 의사 소통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특훈이라도 실시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서로 오가는 건 아니고. 오이카와씨가 우리 집에 오지는 않아.”


   역시, 카게야마 토비오는 강적 중의 강적이었다. 카게야마의 눈치 없음이 정점을 찍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그 다음 대화였지만.


   “어젠 사실 오이카와씨 집에 가려고 했던 건 아닌데, 카레 먹고 가라고 해서.”

   “그러니까, 잠깐 들린 것도 아니고 밥까지 얻어먹었단 거야?”

   “설거지는 내가 하려고 했는데, 오이카와씨가 분명히 그릇 깨먹을거라고 그래서.......”


   아니, 내가 지적한 부분은 그게 아닌데. 이상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카게야마의 대답에 히나타는 이마에 땀이 삐질삐질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와중에도 자기도 설거지 할 줄 안다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카게야마를 보며, 히나타는 고등학교 1학년도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장이 터질 것 같아하는 히나타를 보며 타나카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봐라, 이것이 선배의 내공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선배를 가슴 속으로 들먹인 타나카는 카게야마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왜 만난 거야?”


   카게야마한테는 돌직구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지.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고 카게야마의 대답을 기다리던 타나카는, 이윽고 이어진 대답에 조금 다른 의미로 뒷목을 잡을 뻔 했다.


   “어제, 주말이었으니까요. 영화관에서 만나서 영화 봤어요. 오이카와씨가 공짜 표 두 장 생겼다고 그래서.”

   “둘이 영화 보는 사이야?”

   “가끔...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서있는 카게야마를 세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남자 둘이서 영화를? 그것도 오이카와 토오루와 카게야마 토비오의 조합으로? 심지어 처음도 아니야? 오이카와가 먼저 보자고 했고? 카게야마는 그걸 또 좋다고 보러 가고? 상상도 하지 못한 일에 아연실색한 세 사람은 당황스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니시노야에게 바톤 터치.


   “무슨, 무슨 영화?”


   니시노야는 저도 모르게 말을 조금 더듬었지만, 카게야마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제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했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카게야마가 이윽고 입을 열고 뱉어낸 제목에, 세 사람은 놀랍도록 고요해졌다. 빠르게 오가는 시선들에서 대화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거, 멜로영화 맞지?

   정말 커플들끼리만 보는 영화......

   대왕님이 카게야마랑 그런 영화를 봤다구요...?


   그렇게 미친듯이 시선을 주고받는 세 사람을, 고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고 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다시 카게야마에게 고정되었다. 이번엔 또 무슨 폭탄 발언을 할 것인가,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은 세 사람은 이어지는 말에 또 다시 차갑게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본 다음엔 잠시 카페에 갔다가, 오이카와씨가 카레 얘기를 꺼내서 오이카와씨네 집에서 같이 식사했습니다.”


   영화보고 카페갔다 같이 밥 먹었대.

   지금 저만 그 생각 한 거 아니죠?

   응, 나도, 지금 생각나는게 한 가지밖에 없는데......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이며 대화를 나눈 세 사람은 차마‘그 단어'를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도통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술만 삐죽대는 카게야마를 보며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느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가장 기본적인 눈치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인간인 것이 분명하다고.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게 카게야마라면 가능하다고.


   “그래서, 왜 처음부터 대왕님이라고 말 안한거야?”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는 조금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카라스노의 라이벌...인데.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고선 약간 뿌듯하다는 표정을 짓는 카게야마를 보며, 한 명의 고등학교 1학년과 두 명의 고등학교 2학년들은 동시에 자신들이 지금 당장 고혈압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카게야마의 얼굴에 서린 저 묘한 뿌듯함은, 자기가 어느 정도 눈치라는 게 생겼다는 생각에 지은 표정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 사람의 속내도 모르고, 만족한 표정으로 코트 정리를 도우러 가려는 카게야마에게 니시노야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카게야마, 도대체 오이카와랑 무슨 사이야?”

   “어...중학교 선후배 사이,면서...라이벌이요?”


   도대체 왜 그런 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가버린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보며, 세 사람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아냐, 카게야마. 그거 아니야. 도대체 어떤 중학교 선후배 사이의 라이벌이, 남녀 사이었으면 데이트라고 할 만한 짓을 해?


   눈치가 없으면 세상 사는게 몇 배는 쉬워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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