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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HQ

[오이카게] 지각 “오이카와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내뱉는 말이 저 모양이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부른 지 십 분밖에 안 됐거든, 하고 받아치려던 오이카와의 시야에 카게야마의 들뜬 표정이 들어찼다. 잔뜩 삐쳐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나름 꾹 참는 것 같았지만 구불구불해진 입매로 보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뭔가 기대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지, 토비오, 카라스노에서 또 이상한 걸 가르쳤나? 생각이 거기까지 달음박질하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도 어디, 대체 무슨 속셈인지 들어는 봐야 할 터였다. 묘한 짜증을 억누르며 웃는 얼굴을 해 보였다. “늦게 오긴 무슨, 토비오 보고 싶어서 최대한 빨.. 더보기
[아카카게] Love Me Right Love me Right내 우주는 전부 너야 “케이지.”“케, 이….”“다시, 케이지.”“케, 이, 지.”“그래, 잘 했어.” 남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부드러운 손길이었습니다. 나는 잠자코 그 손길을 받으며 눈을 깜박였습니다. 눈꺼풀이 움직이는 것에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일전에 입술과 혀를 이용해 나의 이름을 더듬더듬 말하는 행동도 크게 부자연스럽지는 않았지요. 당연한 일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모두 아주 많은 노력들의 산물입니다. 나의 노력은 아닙니다. 나를 만든, 나의 부모들의 노력이지요. 말캉한 피부도, 새카맣고 윤기나는 머리칼도, 새하얀 피부도, 불투명한 손톱도 모두 그들의 노력입니다. 무슨 말인지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최첨단 공법과 값비싼 신소재를 가지.. 더보기
[시라카게] Artificial Love Artificial Love치사량을 넘긴 애정 안온한 일상이란 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시라부 켄지로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실 그는 저의 별 볼일 없는 인생이 어떻게든 엉키고 또 엉키게 될 것 역시 익히 알고 있어서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가 그 불운한 운명을 깨달은 것은 그가 열두 살이 되던 해였는데, 그건 사실 그렇게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평화 보육원에서는 열 살이 넘으면 대개 자신의 인생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알게 되기 마련이었으므로 그는 외려 조금 늦은 편이었던 것이다. 거기선 탈선이 일반적이었고 나이가 들수록 어둠에 점점 가까워졌다. 고교를 졸업해 보육원을 떠난 후엔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이가 몹시 드물었고 대부분 뒷골목으로 빠져 싸구려 깡패 짓이나 하게 .. 더보기
[오이카게] 절망고문 *연령반전, 이복형제 소재. 절망고문 그-카게야마 토비오는 요즘 절망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와 관계없는 남의 사정에 귀를 기울일 만큼 상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나는 더 이상 남이 아니고, 심지어 지금은 같은 지붕 아래서 단둘이 지내고 있으므로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나보다 네 살이나 위인 대학생인데다가 만난 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은 사람이니 편하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가 쭈뼛쭈뼛 말을 걸어오는 걸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새어머니는 그가 원체 말도 많지 않고 낯도 제법 가리는 편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내게 애써 그렇게 접근해오는 것을 보면 그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 더보기
[히카게] Lovefunction; Convergence *170604 카게른 교류회에 가져갔던 글입니다.*아웃팅 및 학교폭력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Convergence한없이 종말에 가까운 종말과 좋아한다는 말에는 접점이랄 것이 그다지 없었음에도 나는 그 두 개의 조합이 지독하게 자연스럽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사실 어울리다 못해 마치 하나의 단어, 혹은 하나의 어구 같았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걸 그럴싸하다고 여겼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모두 그 애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그 애 탓이 맞다. 이건 모두 그 애가 초인종을 누른 시점이 하필이면 TV에서 종말을 이야기하던 순간이었고 그 애가 문가에서 나를 마주하자마자 바로 내뱉은 말이 하필이면 좋아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뉴스 소리와 그 애.. 더보기
[쿠니카게오이] 해수 해수 소멸에 대한 의지만이 난무하는 무기력의 여름이다.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반팔 셔츠를 입은 채 선풍기 앞에 앉는다. 낡은 선풍기는 날개가 돌아갈 때마다 어딘가에 턱턱 걸리는 소리를 낸다. 어긋난 부분이 있나 싶은 생각에 안쪽을 들여다 볼 생각을 잠시 하지만 이내 접는다. 날선 시선은 곧 천장 어드메를 훑는다. 우수수 빗물 같은 것이 쏟아지는 환영이 어른거린다. 담수가 아닌 듯하다. 나는 그러면 그 위에 바다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푸른 기 가득한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아니다. 그건 짙은 남색 혹은 검은색의 심해에 가깝다. 그건 나의 바다다. 나는 헛웃음을 조금 웃는다. 쓴맛보다 단맛이 강한 우울이 혈관을 타고 유출된다. 구조 작업도 방제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문장.. 더보기
[오이카게히] 어째서 나의 봄은 이번에도 분홍빛이 아닌가에 대해 @TellezSenicaa 님 리퀘! 그 애는 좀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말이나 행동에서 잘 드러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애의 생각하는 방식에는 어딘지 묘하게 타인과 다른 구석이 있었고 나는 그런 그 애를 자주 오해하곤 했다. 자랑스럽게 말할 일은 아니지만 부딪히기도 자주 부딪혔고 또 제법 심각하게 다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그 애의 탓은 아니었고 동시에 모두 내 탓인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나름 화해할 줄 아는 사람들로 자라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초의 기억이 있기도 전부터 그 애와 나는 함께였고 따라서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간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애를 내 식으로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 더보기
[오이카게] 어려운 로맨스 *수상한 로맨스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캐붕대잔치 주의 아침부터 아오바죠사이 숙소가 제법 소란스러웠다. 아침잠이 유독 많은 킨다이치는 이상하게 시끄러운 바깥의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지, 싶은 마음에 비몽사몽 이불을 걷어내고는 쩍쩍 하품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나오던 킨다이치는 이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눈을 수차례 비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눈살을 찌푸리며 부엌을 살피던 킨다이치는 곧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잠결에 나왔다고 해도, 오이카와의 저 말도 안 되게 밝은 표정은 도저히 그가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범위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이카와는 그런 표정을 멤버들에게 전혀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이카와.. 더보기
[우시카게] 비밀 연애가 어려운 이유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오이카게] 수상한 로맨스 *우진(@ugeniee)님의 리퀘로 쓴 글입니다:) 수상한 로맨스 아직 해가 다 뜨지 못한 이른 아침, 온통 검게 차려 입은 한 남자의 인영이 문간에 발을 들였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새카만 선글라스와 깊게 눌러쓴 모자에 두터운 면 마스크까지, 신분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남자는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주위를 흘긋흘긋 살피는 모습이나, 조심스레 옮기는 발걸음에서 불안한 태가 났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제가 제일 먼저 온 것임을 직감했으나 여전히 안심은 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큰일이다,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해.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속삭이던 말을 재차 반복한 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떼마다 발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