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ezSenicaa 님 리퀘!
그 애는 좀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말이나 행동에서 잘 드러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애의 생각하는 방식에는 어딘지 묘하게 타인과 다른 구석이 있었고 나는 그런 그 애를 자주 오해하곤 했다. 자랑스럽게 말할 일은 아니지만 부딪히기도 자주 부딪혔고 또 제법 심각하게 다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그 애의 탓은 아니었고 동시에 모두 내 탓인 것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나름 화해할 줄 아는 사람들로 자라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초의 기억이 있기도 전부터 그 애와 나는 함께였고 따라서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간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애를 내 식으로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유를 대라면 댈 수 있겠지만 나의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내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감히 내가, 그 애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그런 생각은 비록 단상일지라도 조금은 꺼림칙했고 심지어 두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그 애는 그냥 그 종잡을 수 없이 엉뚱하고 동시에 제멋대로인 모습이 어울렸다. 내가 그 애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그것이 가장 어울렸다.
그런 면에서 그 선배, 오이카와 토오루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였다. 왜, 생각만 해도 짜증이 절로 나고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 아닌가. 내게는 그것이 오이카와 선배였다. 그러나 사실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일은 조금 복잡하다. 그는 척 보기에 나와 그 애의 세상에 걸어들어올 만한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고 따라서 나는 왜 하필이면 그 애가 그의 표적이 된 것인지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반반한 얼굴과 유들유들한 성격 아래 짙고도 깊은 시커먼 속을 감추어 둔 그의 느닷없는 습격은 애초부터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철저히 목적을 가지고 접근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에 가장 기분이 상했다. 당신이 뭔데 그런 불순한 접근을,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애한테 그렇게 뻔뻔하게? 속으로는 그에게 왁왁 화를 내고만 싶고 꼬치꼬치 따져 묻고만 싶었으나 그 애가 곤란해지는 것은 싫었으니, 나는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뭐, 그래서 그 불순한 의도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애는 연애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그 애의 옆에 있었으니 나보다 그 사실을 잘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애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밤을 새서 편지를 쓴다거나, 다정하게 웃으며 깜짝 선물을 내민다거나 하는 일과는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연애 경험이 없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고 어쩌면 다행이기도 했다. 사실 그 애는 누구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별난 그 애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티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애와 알고 지낸지 대강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낌새가 있던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내가 그 애를 완벽히 다 안다거나 그 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론 그랬다. 그 애는 아예 그런 방면에 관심이 없었고, 좋아하는 마음이니 달콤한 연애니 하는 것들에 시간을 쏟을 만큼 감정적이거나 섬세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아마 그 오이카와 씨도 꽤나 애먹다가 끝에는 결국 떨어져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오이카와 씨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꽤나 분명하다. 원인도 계기도 알 수 없지만 오이카와 씨의 관심 레이더 안에 그 애가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그 관심은 호감으로 순식간에 자라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고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오이카와 씨가 카게야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연애 감정을 말하는 것이 맞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오이카와 씨가 울린 사람이 남녀를 불문하고 한 트럭은 될 것이라고 하던데, 일단은 그런 사람이 그 애를 건드리는 것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오이카와 씨가 그 애를 바꿔놓아 그 애가 마음을 열고, 둘이서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면 그 애도 언젠가 그렇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뭐, 아직까지는 그 애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으니 괜찮지만, 만약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오이카와 씨의 그런 접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다.
그러나 음, 좀 더 솔직해져 보자면, 내 입으로 말하기는 무지 부끄럽지만…….
내가 더 오래 좋아했는데.
그건 고교 2학년 봄의 일이었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말이다. 그때 그 애와 나는 같은 반이었고 내 자리는 그 애의 두 줄 옆, 한 칸 뒤였다. 그 애의 자리는 창가였고 그래서 그 애는 수업이 지루해질 무렵이면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런 그 애의 뒷모습이며 옆모습을 흘깃거리는 버릇이 생겼지만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그 애는 나의 그 비밀스런 관찰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안심하고 그 애를 마음껏 바라보았으며 그 애의 머리칼이 열린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제법 좋아했다. 푸른 눈과 주욱 내밀어진 입술을 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렸고 턱을 괸 손과 모로 기울어진 고개를 보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그 애에게 품은 마음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나의 시선이 그 애에게 발각된 날이 있었다. 교실에서는 영어 수업이 한창이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그 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애 역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중이었는데, 그 날은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시선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했고 결국 그 애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애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입을 뻐끔거리기에 나는 더 당황해버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 모양을 읽었다. 왜 봐, 하고 묻는 말에 나는 무어라 대답할 것을 찾지 못해 안 봤거든, 하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그 애는 눈살을 찌푸렸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변명을 쏟아내었다. 창문 본거야, 너 말고. 그 애는 인상을 쓰던 것을 그만두고 평소의 얼굴을 해보였다. 수업 재미없지, 묻는 말에 나는 가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애가, 나도, 하고는 푸스스 웃는데.
이상하지, 뒤로 번지는 햇살 탓이었는지, 그날따라 푸르렀던 하늘 때문인지, 그 애가 웃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으니.
한 번 그런 생각을 해 버리니 이어지는 생각들도 하나같이 그 애에 대한, 그 애를 향한 나의 감정에 대한 것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자꾸 그 애 쪽으로 시선을 두게 되는지, 왜 자꾸 그 애만 보면 심장이 빠르게 달음박질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왜 자꾸 그 애가 꿈속에 나와서는 웃어주는지. 몇 날 며칠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보았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아니, 답을 알 수 없었다기보다 인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 애를, 그 애를?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직시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도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지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인정하고 나면 속이 편해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 애에게 나는 그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일 뿐일 테니, 만약 내가 참지 못하고 고백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애와 나의 사이는 다시는 붙일 수 없을 만큼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욕심은 났지만, 그 애와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혀끝에 올라앉는 달콤한 말들을 애써 목 뒤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예쁘네, 나는 왜 이렇게 네가 좋을까. 왜 너라면 다 좋을까. 뱃속을 무겁게 채우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느껴질 무렵 나와 그 애는 졸업을 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그 애를 따라 지원한 탓에 나와 그 애는 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고 나는 그것이 기뻐서 며칠이나 방긋방긋 웃는 낯으로 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그 애는 오이카와 씨를 처음 만났다.
나와 그 애가 같이 듣는 교양 수업이 하나 있었다. 실은 내가 무리하게 시간표를 짜 그 애와 간신히 겹치게 만든 것이지만, 뭐 어쨌든. 그 수업은 조별로 하는 활동이 많았으므로 교수님이 임의로 짜주신 조를 확인해 조별로 모여앉아야 했다. 나는 3조였고, 그 애는 4조였다. 바로 옆 조여서 멀리 떨어져 앉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듣는 수업이 하나뿐인데, 이왕이면 같은 조인 편이 더 좋았을 텐데.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내 오른쪽에 앉은 그 애를 곁눈질하는데, 우연히 그 애의 왼쪽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시선이 스쳤다. 왜 이 쪽을 보고 있지,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고는 앞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결국 눈길은 그 애 쪽으로 다시 향하고야 말았다. 슬쩍슬쩍 그 애를 보는데, 어라. 또 다시 그 사람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앞을 보고, 그러다가 다시 그 애를 보고, 그 사람과 눈이 또 마주친 후에야 나는 그 사람도 그 애를 보고 있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교수님의 강의 후 조별로 인사를 나누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수업이 끝났다. 나는 당장 그 애에게 가서 같이 점심을 먹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애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느릿느릿 가방을 싸는 척 하며 그 애를 기다리던 중에 그 애의 대화 상대가 아까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이 그 애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가자마자 그 애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은 누구야? 아무렇지 않은 척 묻자 그 애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우리 조 조장 맡은 선배. 짧게 뱉고는 가방을 싸는 그 애에게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무슨 얘기 했어? 내 질문에 그 애는 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랑 친해지고 싶다고 그러더니 번호 물어보길래 알려줬어.”
“어?”
그제야 깨달았다. 그 애는 내 눈에만 예뻐 보이는 게 아니었던 거다.
그 후로 그 선배는 계속 그 애에게 연락을 했다. 같이 밥을 먹다가 그 애의 핸드폰이 울리면 그건 무조건 그 선배, 오이카와 씨였다. 메신저나 메일로 영양가는 없지만 의도는 명확한 대화를 끊임없이 걸어오는 것으로 보아 오이카와 씨가 그 애에게 상당히 깊은 관심 내지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심지어 그 애와 같은 단대 소속이었고, 따라서 그 애는 오히려 나보다 오이카와 씨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억울했고 화가 났지만 무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애와 나는 친구이기는 했지만 우리의 관계는 딱 그 선에서 끝이었으니. 친구 사이에 그런 걸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나는 오이카와 씨가 그 애의 선배라는 이유로 그 애에게 밥을 사준다거나, 그 애의 과제를 도와준다거나 하며 수작을 거는 꼴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마주칠 때마다 매서운 시선을 쏜다든지, 그 애에게 그와 관련된 소문을 흘린다든지 하는 것들뿐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마음속으로 지긋지긋하게 싫어했고 그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정정한다. 숨기지 않은 정도가 아니기는 했다. 그래도 굳이 그를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아도 오이카와 씨는 내가 그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 애에게 관심이 있다면 내가 그 애와 자주 붙어다니는 것은 물론 내가 그 애에게 품은 마음이 그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을 테다. 서로 굳이 말은 하지 않지만 그와 나의 사이에는 늘 살벌한 분위기가 흘렀고 나는 그것이 언젠가 뻥 터지게 될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가 문제의 그 교양 수업이 끝나고 나를 슬쩍 불러낸 것은 충분히 예상 범위 안의 행동이었다. 솔직히 그가 나를 불렀을 때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멀쩡한 척을 했다. 마침 비어 있던 옆 강의실에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친구한테 관심 있는 건 알지?”
굳이 친구라는 말에 강세를 두며 다짜고짜 하는 말에 모를 리가 있나요, 대답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만 있으니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나 좀 진지하거든. 그러니까 네가 눈치껏 조금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뻔뻔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두 학번이나 선배이니 최소한의 존중은 해줘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본능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거의 걸러지지 않은 말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 애는 제 친구인데요. 비키긴 뭘 비켜요?”
“친구라고 개인사에까지 간섭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닐 텐데.”
받아치기도 참 잘 받아친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냉정을 되찾으려 애를 썼지만 감정은 말을 듣지 않았다. 또 한 번, 홧김에 뱉어지는 말들이 살벌한 공백을 가득 메웠다.
“저도 걔한테 관심 있어요.”
“그래? 몰랐네?”
재수 없어. 진짜 재수 없어.
“왜 자꾸 모른 척 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도 진지하거든요. 선배한테 뺏길 생각 없어요.”
아, 말해버렸다.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예의 없는 어조와 태도이기는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까지 그렇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자 그는 헛웃음을 토했다. 허, 그래. 그도 제법 짜증이 솟구쳤는지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더니 다시 눈을 뜨고 나를 사납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 씨도 꼬마한테 뺏길 생각은 없어.”
어디 어느 쪽이 이기는지 해보자고. 그는 그렇게 또 기분 나쁜 말들을 툭툭 쏘아대고는 내가 무어라 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아, 정말 짜증나. 낮게 중얼거리며 양손으로 괜히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는데 갑자기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열렸다. 설마 다시 온거야? 생각하며 날선 시선을 문가에 고정한 나는 이내 눈을 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왔어?”
“너, 누구 좋아해?”
“어?”
열심히 미소를 꾸며내려는데 그 애가 직격타를 날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오이카와 씨와 한 대화를 들은 건가? 어디부터 들은 거지? 언제부터? 왜? 어쩌다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어떻게 하지? 여기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야? 물음표들로 정복된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마냥 풀리지가 않았다. 그 애는 그런 나를 보다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러니까,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니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좀 들려서… 그래도 다 들은 건 아니고, 음, 오이카와 씨한테는 안 들켰어. 이 와중에도 조금 당황한 듯 빠르게 말하는 것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증이야, 생각하면서 그 애를 빤히 바라보니 그 애가 재차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둘이 같은 사람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 그러니까… 누구인지는 안 물어볼게. 그냥, 어, 힘내라고…”
그러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그 애는 지금 나랑 오이카와 씨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솔직히 나는 그다지 티를 내지는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는데, 그렇게 대놓고 꼬시려고 애를 쓰던 오이카와 씨의 노력들도 전혀 몰랐다는 것 아닌가.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갑자기 오이카와 씨에게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혼란스런 머릿속을 간신히 정리한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말,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애는 맞는데, 예쁘긴 정말 예쁘니, 어떡하지? 머릿속에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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