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로맨스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캐붕대잔치 주의
아침부터 아오바죠사이 숙소가 제법 소란스러웠다. 아침잠이 유독 많은 킨다이치는 이상하게 시끄러운 바깥의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지, 싶은 마음에 비몽사몽 이불을 걷어내고는 쩍쩍 하품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나오던 킨다이치는 이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눈을 수차례 비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눈살을 찌푸리며 부엌을 살피던 킨다이치는 곧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가 잠결에 나왔다고 해도, 오이카와의 저 말도 안 되게 밝은 표정은 도저히 그가 상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범위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이카와는 그런 표정을 멤버들에게 전혀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이카와 씨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안다고? 킨다이치는 조금 혼란에 빠졌으나 순식간에 다가와 말을 거는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좋은 아침, 킨다이치!”
“아, 네, 좋은 아침....”
“뭐야, 반응이 너무 시들한 걸? 오이카와 씨 상처받는다고!”
리더가 먼저 그렇게 적응 안 되는 짓을 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킨다이치는 속으로만 진심을 곱씹으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뭐, 어쨌든 오이카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지금의 오이카와는 다른 일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잔뜩 들떠 있었다. 심지어 오늘 식사 당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치마까지 차려 입은 채 부엌을 분주하게 오가는 것을 보니 단지 들뜬 정도가 아닌 것 같았다. 배고프지, 킨다이치. 좀만 기다려, 준비 거의 끝났으니까.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평소의 오이카와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킨다이치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 같기까지 했다. 그는 간신히 네, 대답하며 뒷걸음질해 거실로 피신했다. 다른 멤버들은 이미 거실에 모여 앉아 질린다는 표정으로 주방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살피고 있었다.
“오늘은 또 왜 저래요?”
떨떠름하게 묻는 킨다이치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쉬었다. 왜긴 왜겠어, 또 전이랑 같은 이유겠지. 영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이와이즈미의 옆에 앉아있던 쿠니미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좋을까요, 볼수록 신기하네. 중얼거리는 말에 마츠카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걸 사랑의 힘이라고 부르는 건가? 왠지 간질거리는 단어가 등장하자 거실에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한창 냄비 안의 국물을 휘젓던 오이카와의 콧노래만이 숙소를 가득 채웠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장밋빛 사랑 속에 잠겨 있었다.
간만의 데이트였다.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가 모두 휴식기를 가지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날 날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이카와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촬영 중이었고, 곧 솔로 컴백을 슬슬 준비해야 했으며, 카게야마의 경우 화제가 되었던 탓에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불려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한창 바쁠 때에는 한밤중에 잠시 얼굴만 보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오이카와의 드라마 촬영이 종료되자 그나마 시간이 비는 날이 생겼고, 마침 카게야마도 같은 날 스케줄이 없던 참이었기에 데이트 약속을 잡았던 것이었다. TV로도, 인터넷으로도, 포스터로도 수도 없이 본 얼굴이었지만 역시 실제로 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 빨리 보고 싶다. 생각하며 운전대를 손끝으로 톡톡 치던 그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 사이를 틈타 카게야마와의 첫만남을 잠잠히 회상했다.
절뚝이며 아오바죠사이 대기실을 나온 오이카와는 카라스노 대기실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가까워질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오긴 나왔는데, 가서 어떻게 번호를 달라고 그러지? 멤버들도 다 있을 테고, 심지어 방금 전에 만났었잖아. 으으, 어떡하지. 정말 아무런 계획이랄 것도 없이 뛰어나온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할 무렵, 복도에 있는 정수기 앞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새카만 머리칼로 덮인 동그란 뒤통수와 길게 뻗은 팔다리를 눈에 담자 오이카와는 잠시 사고 회로가 완전히 정지되고 말았다. 숨이 답답하게 막히고 심장이 달음박질을 했다. 아 어떡하지, 이렇게 갑자기 마주쳐 버리다니! 다리만 멀쩡했어도 발을 동동 굴렀을 테다. 그런 오이카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물병에 물을 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윽고 물이 꽉 차자, 뚜껑을 덮고 고개를 돌린 카게야마의 시야에 복도 한가운데에 얼어붙은 오이카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담담하게 인사를 건네는 카게야마가 지나치게 좋아서 오이카와는 복도 한 가운데서 난동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으나 이내 애써 평정심을 되찾고 상쾌한 미소를 던졌다.
“저기, 토비, 아니 카게야마 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무슨 얘기....”
“번호 좀 줄래요?”
언어 중추가 뇌에서 발바닥으로 이동이라도 한 듯, 허술하고 뜬금없는 말이 순식간에 입에서 튀어나왔다. 오이카와 스스로도 말을 뱉어내고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입을 틀어막고 싶었을 정도였다. 미쳤어, 오이카와 토오루? 제정신이야?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말로 물어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머릿속의 온갖 생각들이 복잡하게 꼬이고 엉켜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번호를 따이게, 아니 뜯기게 생긴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오히려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불러드릴까요?”
어?
의외의 반응에 오이카와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릴 뻔 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 여기 찍어주세요. 오이카와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든 카게야마는 제 번호를 꾹꾹 누른 후 오이카와에게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요즘 카게야마 군 무대 잘 보고 있어서, 친해지고 싶었어요.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아 아무렇게나 쏟아져 나오는 말은 오이카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변명이라는 것이 티가 났으나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새 꾸벅 인사를 하고 멀어지는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심장 멈추는 줄 알았네. 나 정말 반한 건가? 답해줄 이가 없는 물음을 속으로 물으며 오이카와는 슬쩍, 카게야마의 번호가 찍혀 있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토비오라고 저장해야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무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밴 안에서 오이카와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제 번호는 알려주지 않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카게야마 군, 오이카와 토오루예요. 짤막한 메시지를 보낸 오이카와는 눈을 감고 조수석 등받이에 기대었다. 괜히 가슴이 마구 두근대었다. 이제 번호도 있고, 곧 두 팀 다 활동이 끝날 테니 밖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러다 보면 이 마음에 대해 확신도 생길 테고, 혹시 그러다가, 그러다가... 차마 생각을 더 잇지 못하고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운전을 하던 매니저는 그런 오이카와가 영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흘긋거렸지만 지금 오이카와의 눈에 다른 게 들 리 없었다. 아, 너무 좋다. 싱글벙글 웃는 낯은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에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토비오가 답장 해 줬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오이카와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발신인 토비오, 라는 글자가 보였고, 꽤나 장문의 글이 보였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오이카와의 입가에 느릿하게 미소가 번졌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정말 팬입니다. 연습생 떄부터 선배님 영상 보면서 연습했어요.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박. 토비오가 내 팬이래. 뭐, 토비오가 내 팬이야? 내 팬이라고? 내 팬?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같은 문장을 몇 번씩 읽고 또 읽으며 곱씹었다. 그래, 오이카와 토오루 아직 안 죽었다니까. 최강 아이돌이라고. 한참을 그렇게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는 뒤늦게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뭐라고 보내지? 뭔가 좀 선배의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친근했으면 좋겠는데. 또 한참을 답장할 내용을 고민하던 그는 몇 문장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결국 숙소에 거의 다 와서야 답을 보낼 수 있었다.
고마워요. 나도 잘 부탁해요. 그리고 선배님 말고 오이카와 씨라고 불러도 괜찮은데.
왠지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꼬시는 못된 선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 생각하던 오이카와는 그것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런 오이카와의 모습을 매니저는 더더욱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기다 오이카와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만 이와이즈미의 시선도 더해졌지만, 행복하게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오이카와가 그것을 알아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는 사이 차는 숙소에 도착했고, 오이카와는 다친 다리를 낑낑대며 밴에서 내렸다. 정말, 불편해 죽겠네. 이걸 앞으로 2주나 더 해야 하다니. 그러나 불만을 품는 것도 잠시, 핸드폰의 알림음에 오이카와의 표정은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네, 오이카와 씨.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오이카와 씨라니, 토비오가 내 이름 불러줬어.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모습이 꼭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 같았다. 얼굴에 가득히 띄워진 웃음은 누가 봐도 수상할 만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것을 눈치챈 것은 매니저와 이와이즈미 뿐이었다. 오이카와 저거, 아까도 갑자기 번호 따러 간다고 하더니만, 곧 연애하겠네. 아니면 차이든지. 핸드폰을 도통 손에서 놓지 못하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이와이즈미는 혀를 끌끌 찼다. 아무것도 모르는 오이카와는 열심히 손을 놀려 답장을 작성하고 보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요. 활동 끝나면 같이 식사라도 한 번 해요. 피곤할텐데 푹 쉬고. 다음에 또 봐요.
밥은 내가 사줘야지. 토비오 뭐 좋아하는지, 팬카페에 검색하면 나오려나? 어디 인터뷰에서 카레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디가 맛있지? 혼자만의 온갖 즐거운 고민에 빠진 오이카와였다.
그리고 바쁘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오이카와도 반깁스를 풀었고, 마지막 음악 방송에서는 안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렇게 무사히 활동을 마무리하고, 아오바죠사이는 제법 긴 공백기에 들어섰다. 약 일 년 가량 멤버 각각의 활동에 치중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일전에도 연기 경험이 있는 오이카와는 드라마에 캐스팅되었고, 또 완전체 공백기의 마지막을 장식할 솔로 활동을 계획중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촬영 전까지 한 달 가량 비는 시간이 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다 오지, 오이카와? 매니저가 슬쩍 떠보듯이 묻는 말에 오이카와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숙소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 자식, 진짜 연애하나? 의심하는 매니저의 집요한 시선을 눈치 채기엔 오이카와의 마음이 너무 들떠 있었다.
안녕, 오이카와예요. 혹시 이번 주에 스케줄 비는 날 있어요? 같이 밥 먹어요.
메시지를 보내 놓으니 마음이 또 두근거렸다. 토비오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조금 긴장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수요일에 시간이 빈다는 카게야마의 답에 걱정은 모두 날아갔다. 몇 시쯤 괜찮아요? 내가 숙소로 데리러 갈게요.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을 잡은 오이카와는 수요일에 봐요, 하고 마지막 문자를 보낸 후 침대 위를 굴렀다. 토비오랑 데이트다, 데이트! 잔뜩 신이 나서는 괜히 포스터를 하나 꺼내 보기도 하고, 카라스노 앨범에 들어있던 포토북도 복습한 그는 혼자 푸스스 웃었다. 그래도, 토비오는 실제로 볼 때가 제일 좋아. 작게 중얼거린 그는 카게야마 포토카드를 가슴에 안고 또 침대 위를 뒹굴었다.
첫 데이트는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카게야마가 좋아한다는 카레를 같이 먹을 때 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지만, 밥만 먹고 헤어지긴 아쉽다며 간 인적 드문 카페에서는 제법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음악이나 아이돌 생활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호감이 있는 상대와 이야기하니 일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연습생 시절 동경하던 대상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도통 믿기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흘러 저녁때가 되었다. 또 마주 앉아 식사를 했지만 점심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돌 일과 관련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중간중간 튀어나왔고, 가끔은 오이카와가 던진 농담에 함께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카게야마를 숙소까지 데려다 준 후 돌아오는 길에, 오이카와는 조금 확신을 해 버리고 말았다.
아, 나 토비오 정말 좋아하나봐.
그 뒤에도 두 사람은 몇 번 더 만나 같이 시간을 보냈다. 한 번, 두 번, 만남이 쌓일 때마다 두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토비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카게야마는 창법이나 안무 연습 방법보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변화는 느렸지만 확실하게 일어났다. 그러니까, 오이카와가 고백할 용기를 얻을 정도로 말이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서 저를 바라보는 카게야마의 시선이 너무 달콤했고, 해를 등진 얼굴에 지는 그림자마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반쯤은 계획적이었으나 반쯤은 충동적이었던, 그래서 더 솔직한 고백이었다.
“좋아해, 토비오.”
나랑, 연애할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오래도록 식지 못했다. 대답은? 물론 예스.
그렇게 시작된 연애는 곧 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가 공유하는 비밀이 되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밝혔을 때 양측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오이카와가 어린 타그룹 막내를 데려간 도둑놈으로 매도되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두 사람은 꽤나 달달한 연애를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두 그룹의 멤버들에 의해 오이카와는 남의 막내를 데려갔으나 그래도 똥차는 아닌 도둑놈으로 규정되었다. 뭐, 그래도 오이카와는 어찌 되었든 두 사람이 행복하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싶었다.
카라스노 숙소 앞에 도착할 때쯤 회상도 끝이 났다. 직접 얼굴을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의 일이었으므로 오이카와는 첫 데이트 때보다도 더 두근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을 열고 나온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보자마자 표정이 환하게 폈다. 오이카와 씨! 반쯤 달리는 듯한 걸음으로 다가온 카게야마를 오이카와가 꼭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응, 나도 보고 싶었어.”
직접적인 표현에 서툰 카게야마가 먼저 보고 싶었다는 말을 꺼낸 것이 사랑스러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토비오 보니까 너무 좋네. 중얼거리는 말에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오이카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간만의 데이트에 두 사람 모두 잔뜩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있었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또 식사를 하고, 오이카와의 차로 숙소에 돌아가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코스였으나 두 사람은 서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살짝 손도 잡아 보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엔 깍지도 껴 보고, 은근슬쩍 구석에서 포옹도 해 보고, 그동안 못한 스킨십을 다 하겠다는 듯이 구는 두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귀여워. 누가 토비오 탐낼까봐 나는 늘 걱정이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이카와가 던진 말에 카게야마가 조심스럽게 먼저 오이카와의 손을 잡기도 했다. 저는 오이카와 씨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달달한 말들이 오가는 수줍은 연애는 마치 환한 색감의 로맨스 영화마냥 예뻤다.
데이트의 마지막 순간은 늘 어려웠다. 카라스노 숙소 앞까지 카게야마를 태워준 오이카와는 헤어짐이 영 아쉬웠는지 숙소 문 앞까지 카게야마를 바래다주었다. 시간 많이 늦었다. 얼른 들어가서 자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손은 아직도 카게야마의 양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작게 중얼거리는 카게야마가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오이카와는 그 파란 눈동자에 제 눈을 맞추었다. 나도 너무 아쉽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 그렇게 한참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만 꼬옥 잡고 있던 두 사람 사이에 살금살금 묘한 기류가 흘러들어왔다. 키스할까, 지금이라면 입을 맞춰도 되지 않을까.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느껴 고심하던 오이카와는 결국 천천히 카게야마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코가 아슬아슬하게 맞닿을 것 같은 거리가 되자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이 입술에 스미려는 순간,
“저기, 우리 막내 좀 빨리 보내 주시죠?”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황급히 떨어졌다. 문을 연 것은 스가와라였다.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입은 도저히 그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뱉었다. 한참 전에 와 놓고는 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느냐며 잔소리를 쏟아내는 모습에 오이카와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카라스노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막내를 데려간 도둑놈, 정도라는 것을 익히 느끼고 있었기에 그는 은근히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만 가볼게요. 억지 미소를 입가에 걸고 말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따 연락할게. 잘 자. 오이카와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데리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 오늘도 키스는 물 건너갔구나. 이미지 개선도 실패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비죽이며 쾅 소리를 내고 닫힌 문 쪽으로 눈을 흘겼다. 언제쯤이면 이 어려운 로맨스가 술술 풀리는 날이 올까. 오늘도 오이카와는 고민, 또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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