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자마자 내뱉는 말이 저 모양이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부른 지 십 분밖에 안 됐거든, 하고 받아치려던 오이카와의 시야에 카게야마의 들뜬 표정이 들어찼다. 잔뜩 삐쳐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나름 꾹 참는 것 같았지만 구불구불해진 입매로 보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뭔가 기대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지, 토비오, 카라스노에서 또 이상한 걸 가르쳤나? 생각이 거기까지 달음박질하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도 어디, 대체 무슨 속셈인지 들어는 봐야 할 터였다. 묘한 짜증을 억누르며 웃는 얼굴을 해 보였다.
“늦게 오긴 무슨, 토비오 보고 싶어서 최대한 빨리 왔다고.”
“아닙니다! 늦게 오셨습니다!”
정말 더럽게 눈치 없는 연하 애인의 태도에 또 기분이 상해버릴 것 같았지만 오이카와는 침착하게 팔짱을 꼈다. 갑자기 집으로 와 달라고 하는 말에 만사 다 제치고 왔더니 듣는 말이 늦었다는 말이었다. 대체 어디서 뭘 보고 들었길래 이러는지,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리고 싸한 미소와 함께 가만히 제 얼굴만 바라보는 오이카와의 모습에서 그 속내를 짐작해내는 것은 카게야마에게는 더없이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회심의 일격은 기어이 던져지고 말았다.
“작년에 불렀는데, 이제야 오셨잖아요. 늦으셨습니다!”
“…아.”
맥이 탁 풀렸다. 어쩐지 부르는 시간이 애매하더니. 오이카와는 팔짱을 풀고 한숨을 폭 쉬었다. 이런 유치한 장난질을 알려줄 사람이 카라스노에 누가 있을까, 하나하나 떠올려 보기도 전에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얼굴이 있었다. 하여튼 도통 마음에 드는 짓을 하는 때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제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 카게야마의 두 눈을 응시했다. 이렇게 순진한 애한테 대체 뭘 가르친 거야, 정말. 속으로나마 투덜대며 입을 열었다.
“그거 상쾌 군이 가르쳐 준 거지?”
“아 네, 스가 선배가 오이카와 씨가 좋아할 거라고 했습니다!”
“전혀 아니라고 전해줄래?”
“…별로인가요?”
빛나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풀이 죽은 눈빛을 했다. 웃어줄 걸 그랬나, 너무 까칠했나? 순간의 질투심 때문에 카게야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대놓고 실망했다는 듯 입을 비죽이는 제 연인은 더없이 귀여웠으므로 오이카와는 좀 상냥해져 보기로 했다. 뭐, 언제 한 번 카라스노의 선배라는 사람들을 찾아가야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눈앞의 사랑이었으므로.
“뭐, 오이카와 씨는 마음이 넓으니까. 귀엽다고 해 줄게.”
더없이 다정하지는 못한 그 짧은 말에도 순식간에 밝아지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참지 못하고 결국 팔을 잡아 끌어 품 안으로 몸을 당겼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애인이 올해도 제 것이리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등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조심스럽게 뻗어져 저를 마주 안는 팔의 감촉에 푸스스 웃음이 터졌다. 부끄러운 듯 제 어깨에 고개를 묻는 카게야마의 귓가에 오이카와가 작게 속삭였다.
“해피 뉴 이어, 토비오.”
“…오이카와 씨도, 해피 뉴 이어.”
입술이 맞닿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해 첫 날을 맞이하는 가장 행복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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