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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HQ

[쿠니카게] 저택


*쿠니카게 전력 7회 주제 '나만 몰랐었던 이야기' 참여했습니다.

*약 얀데레 쿠니미 주의




쿠니미 아키라x카게야마 토비오

저택



예쁘다.”

 

너는 내 머리칼을 빗어내리며 등 뒤에 대고 속삭인다. 머리카락이 사륵거리며 얇은 빗살 사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살짝 당기는 두피가 아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아파, 아키라. 작게 투정을 하자 너는 파스스 부서지는 웃음을 낸다. 그러고는 빗질을 멈추고 등 뒤에 바싹 붙는다. 숨소리가 심장의 박동보다 깊이 번진다. 너는 내 귀 뒤에 입술을 대고는 그 얇은 피부를 네 목소리로 흔든다. 느릿하게, 하지만 강렬하게.

 

아프다는 건,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그렇지 않니, 토비오? 덧붙이는 말의 울림이 진하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몸을 떨고 만다.

 


난 숨을 쉬죠, 난 살아있어요.

그 사실만은 나, 믿어도 되는 거겠죠?[각주:1]

 


내가 쿠니미 아키라와 함께 살았던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 없다. 어쩌면 아주 오래 되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상당히 최근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게 그 이전의 기억은 아주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실은 지금에도 나의 기억은 꽤나 흐릿하다. 먼지가 잔뜩 낀 망원경으로 먼 들판을 내다보듯 모든 것이 희뿌옇게 번지기만 한다. 내가 그와 살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을 알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그의 저택에서 산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두 층짜리 고택을 그는 저택이라고 불렀다. 나는 저택이랄 곳에 이전에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으므로, 아니 최소한 그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곳이 저택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그리 칭하는 것을 따라 나도 이 곳을 저택이라고 부른다.

 

저택의 공기에는 오래된 먼지 냄새가 그득하다. 낡은 나무 계단에서는 삐걱이는 소리가 난다. 색이 누렇게 바랜 벽지는 한때 희었으리라 짐작된다. 여닫이문의 쇠 경첩은 녹이 슬었는지 뻑뻑하다. 창문의 걸쇠는 잠긴 채로 굳어 버린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런 단편적인 사실들마저 내 기억속에는 제대로 남지 못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마주할때마다 저택이 꽤나 낡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연히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고작해야 내 또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아키라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된 저택의 주인일 수 있는지가 그 호기심의 중심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어 간혹 아키라에게 물어보면 그는 담담히 그의 가문 소유의 저택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나는 잘 잊으므로 다시, 또 다시 아키라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는 늘 똑같이 대답한다. 나는 그제야 그 궁금증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와 나의 관계이다. 쿠니미 아키라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무슨 사이이기에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면 나는 또 아키라에게 쪼르르 달려가 묻는다. 아키라, 아키라. 우리는 무슨 사이야? 그는 그러면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가 입을 뗀다. 아주, 아주, 느릿하게 목소리가 샌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야.”

 

쿠니미 아키라와 카게야마 토비오는 사랑하는 사이야, 토비오. 그렇게 말하고는 읽던 책이나 쓰던 글 따위에 다시 시선을 돌리는 그에게 나는 차마 무언가 더 부연해달라고 조를 수 없다. 아니, 사실 몇 번 그렇게 해 보기도 했지만, 그는 그러면 짜증에 가까운 투로 그게 전부라며 목소리를 키운다. 그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나는 금방 조용해져서 내 자리로 돌아간다.

 

내 자리란 아키라의 서재 한 쪽에 마련된 푹신한 방석 더미를 가리킨다. 자줏빛 벨벳 커튼으로 창문이 온통 가로막힌 큰 서재 안의 내 자리는, 아주 조그맣지만 동시에 아주 크다. 창가를 제외한 모든 곳에 자유롭게 방석을 깔고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만 마, 하고 매일 말하는 아키라는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그 후에 살풋 웃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춰주기에 두려움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어쨌든간에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사랑,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키라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서재의 수많은 책들 중에는 사랑에 관한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가끔 책장을 뒤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읽으려고만 하면, 글자들이 살아있는 생물 마냥 이리저리 꿈틀대기에 그럴 수도 없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키라에게 또 쪼르르 달려가 물으면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네가 아파서 그래, 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기에 글자를 읽을 수 없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는 늘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내 눈가에 입을 맞춘다.

 

조금 이상한 것은,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기묘한 떨림이 어려 있다는 것이다. 슬픔이나 안타까움과는 거리가 먼 떨림이다. 마치, 마치 기쁜 것만 같은, 환희에 찬 것만 같은 그런 떨림그러나 나는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려 고개를 잘게 젓는다. 아키라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또 되뇌이다가, 내 자리에서 가벼운 낮잠에 든다.

 

잠에서 깨는 것은 저녁 식사 즈음이다. 서재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면 아키라도 하던 일을 멈춘다. ,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이 집의 하나뿐인 가정부다. 혼자 관리하기에는 꽤 큰 저택이지만 부리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 이상할 법도 하지만, 나는 저택의 일은 아키라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가정부는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말하고, 나는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난다. 아키라는 그런 내게 다가와 한 손을 가볍게 그러쥐고 묻는다.

 

좋은 꿈 꿨어, 토비오?”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심지어는 꿈을 꾸기는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내 이마께에 입을 맞춘다. 입술은 늘 따뜻하다. 얇은 피부 사이로 쿵쿵대는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식사 시간은 별 것 없다. 제법 큰 식탁의 한 쪽 끝에 그와 내가 마주보고 앉아 미리 차려진 음식을 든다. 내가 간혹 입맛이 별로 돌지 않아 음식을 뒤적이며 깨작이기만 하고 있을 때면 그는 짐짓 화난 체를 한다. 잘 먹어야 아픈 게 낫지, 토비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순간 질식하듯 압도당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그가 팔을 식탁 너머로 뻗어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기 전까지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식사가 끝나면 그는 가정부를 시켜 내게 물약을 가져다 준다. 네가 아프니까, 치료해주는 약이야. 이걸 먹고 푹 자면 기억도 잘 하게 될 거고, 글도 잘 읽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온다. 그러고는 숟가락에 약을 가득 따라 내 입가에 댄다. 아 해야지, 토비오. 그 말에 나는 순순히 입을 열고 끈끈한 갈색 약을 삼킨다. 혀를 누르는 숟가락에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그는 순식간에 숟가락을 빼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럼 이제 자러 가자, 토비오.”

 

그는 아까와 같이 내 한쪽 손을 가볍게 붙잡는다. 나는 그 손에 의지하여 몸을 일으킨다. 약을 먹은 후에는 이상하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걸 아는 듯이 아키라는 내 손을 잡았던 그의 손을 내 허리춤으로 옮긴다.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그 손에 나는 온전히 몸을 맡기고 천천히 걸어간다.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 한 손으로는 그의 어깨를 잡은 채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첫 번째 방이 침실이다.

 

그는 나를 침실에 데려오고 나서 나를 곧바로 침대에 뉘이지 않는다. 대신 경대 앞의 등받이가 없는 낮은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경대 서랍에서 나무로 된 빗을 꺼낸다. 사실 그 빗이 나무로 된 것이 맞는지는 알지 못한다. 침실에 들어오는 불은 침대 옆의 작은 전등 뿐이라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빗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빗어줄 때에 꽤나 즐거워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무언가 말을 걸면 가벼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 머리카락을 빗겨지다 보면 솔솔 잠이 온다. 그러면 그제서야 그는 나를 다시 일으켜 크고 푹신한 침대에 누인다. 잘 자, 토비오. 잠결에 마지막으로 듣는 온전한 말은 그것이 끝이다. 그는 내 입술에 가볍게 그의 입술을 부딪히고는 전등 불마저 꺼 버리고 침실을 빠져나간다.

 

완전히 잠에 빠져들기 전에 들리는 것들은 아키라와 가정부의 대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대화의 파편들.

 

“…약효가 좋아서계속 기억을…”

“…이 정도면달아날 이유…”

“…아무것도 모르고다 믿고 있을…”

 

서서히 잠에 빠져들며 나는 귓가에 들리는 말들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의 조각들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이내 어쩔 수 없이 잠에 취해 의식을 서서히 놓고, 서서히, 서서히, 놓고

 


내가 쿠니미 아키라와 함께 살았던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 없다. 어쩌면 아주 오래 되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상당히 최근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게 그 이전의 기억은 아주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실은 지금에도 나의 기억은 꽤나 흐릿하다. 먼지가 잔뜩 낀 망원경으로 먼 들판을 내다보듯 모든 것이 희뿌옇게 번지기만 한다





  1. 아이유, 잔혹동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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