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카게] 발 페티쉬
“카게야마, 나랑 재밌는 거 할래?”
선풍기 바람을 쐬며 나른하게 방 바닥에 앉아 있는 여름날의 햇살 아래서, 쿠니미는 무료함으로 얼룩진 질문을 던졌다.
싫어, 라고 대답하려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쿠니미의 눈빛에는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힘 같은 것이 서려 있었고, 카게야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느릿하게 두어 번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고개에 쿠니미는 짧게 미소를 짓고는 양 손으로 카게야마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발을 붙잡았다. 갑자기 끌어당겨진 다리에 깜짝 놀란 카게야마는 쿠니미, 하고 그를 불렀지만 쿠니미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흰 양말이 신겨진 카게야마의 발을 매만졌다. 카게야마 발, 예쁘다. 양 손으로 가볍게 붙잡고는 엄지로 발바닥을 문지르는 손길에 카게야마는 작게 신음했다. 으음, 간지러워… 혼잣말같은 중얼거림에 쿠니미는 피식 웃고는 얼굴을 카게야마의 발치에 가져다 대었다.
“쿠, 쿠니미!”
본능적으로 무언가 감지하고서는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카게야마의 목소리에도 쿠니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입술을 발 끝에 가져다 댄 그는 손을 종아리로 옮기고는 앞니로 양말 끝을 물고 잡아당겼다. 천천히 발을 타고 끌어내려지다 마지막에 휘익, 멀리 던져진 흰 양말의 발가락 부분에는 침에 젖어 만들어진 둥근 얼룩이 남았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양말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이내 다시 손을 내려 맨발을 매만지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히익, 숨을 들이켰다. 아까처럼 발등에 네 손가락씩을 가볍게 얹고는 마사지하듯 엄지로 바닥을 문지르는 것은 참을 만 했으나,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발 뒤꿈치를 매만지는 손길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이름을 몇 번 불러 그를 제지시키려 노력했지만, 반응 없이 제 발을 만지고만 있는 것에 결국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 발 마사지 받는다고 생각하지, 뭐. 그가 마음에 담은 생각의 조각이 안일하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마음이라도 먹었는지, 이제까지와는 다른 감촉이 발에 와닿았다. 카게야마는 눈을 부릅떴다.
“쿠니미, 무슨 짓이야!”
발목을 양 손으로 잡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발등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촉촉, 소리까지 내며 부벼지는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카게야마는 질겁했다. 발을 휘둘러 빼려고 하면 쿠니미가 다칠 수도 있으니 쉽사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미약한 반항으로 발을 잘게 흔드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은 계속 발등 위를 오갔다. 발등을 타고 복사뼈까지 갔다가, 발 뒤꿈치로 내려앉고는 다시 발등으로, 발 모서리로, 발 바닥으로. 흐르듯 움직이는 입술에 카게야마는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아 침을 꿀꺽 삼켰다. 쿠니미가 길게 입술을 댄 새끼 발가락 끝을 타고 기묘한 감정이 피어올라 혈액을 타고 심장에 뿌리를 내렸다.
[쿠니카게] 무기력의 여름
소년들은 나무로 된 마루에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끔벅인다. 마른 팔다리는 나른하게 늘어지고, 검은 머리칼은 바닥에 맞닿아 이리저리 흐트러진다. 선풍기는 윙윙대며 좌우로 목을 돌린다. 휘휘, 부는 바람에 쿠니미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더워,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리지만 옆을 돌아볼 기운은 없다. 그저 눈을 꾸욱 감고는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더운 바람과 선풍기에서 흐르는 찬 바람이 섞이는 그 중간 어드메를 손끝으로 느껴 보려 팔을 들어올린다. 여린 손가락에 바람이 스친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바람 사이로 날카로운 자각이 흘러 마음에 흠집을 낸다. 그러나 이미 베인 자욱 투성이인 마음에 몇 개의 흠집이 더해진다 해서 잘못될 것은 없다. 무던하게 아픔을 흘려 보낸 쿠니미는 눈을 뜬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다섯 손가락이 모두 펼쳐진 제 손 하나뿐이다.
“카게야마.”
저려오는 팔을 내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저의 연인을 불러 본다. 으응, 대답해오는 목소리에는 잠기운이 한가득 묻어 있다. 졸려? 가만히 묻자 한참 지나서야 응, 대답인지 무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린다. 쿠니미는 작게 웃고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말랑한 볼을 바닥에 대고 잠이 들락말락, 의식의 어슴푸레한 경계 위를 누비는 소년을 응시하던 시선은 이내 다시 천장으로 돌아간다. 한참을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게야마의 숨소리에만 집중한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쌕쌕대는 숨을 듣다 보면 저까지 나른해져 잠에 빠져 버릴 것만 같다. 쿠니미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는 얼굴에 두 손을 대 마른 세수를 한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답답하다. 제 옆에서 잠이 든 연인을 생각하면 할 수록 이상하게 갑갑하게 숨이 막힌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카게야마에게 눈을 두어 본다. 입을 작게 벌리고 느릿하게 숨을 내쉬는 모습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워야 하는데. 목이 탄다. 이해할 수 없는 갈증에,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다시 눈길을 천장으로 돌려보낸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생각하며 재차 눈을 감는다. 바닥에 닿은 팔뚝이 답지 않게 차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머릿속에 가득 찬 말을 조심스레 뱉어 본다.
“우리, 헤어질까.”
무기력한 여름날의 권태에는 돌아올 수 없는 끝을 부르는 힘이 있었다.
[히카게] 소유욕
“카게야마, 다른 사람 만나고 온 것 같아.”
점심 시간, 대뜸 학교 뒤편으로 저를 불러내더니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 카게야마는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멍청아, 당연히 다른 사람 만날 수 밖에 없지. 하루 종일 너하고만 있냐? 입술을 비죽이며 하는 말에 히나타는 매서운 눈을 했다. 날카로워진 눈빛에 카게야마는 순간 움찔했다. 저런 눈빛이, 언제 나오는 지 잘 알고 있다. 입술을 살짝 물어뜯는다. 히나타의 눈빛이 순간 움직여 제 입술을 향하는 것을 보고 금방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상한 눈치만 늘었어, 투덜대듯 생각한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다시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히나타가 한 수 빨랐다. 순식간에 뒷목을 잡아채인 카게야마는 순식간에 히나타에게 부딪히듯 입맞춰졌다. 아플 정도로 세게 맞닿은 입술을 느낄 새도 없이 잇새를 열고 입 안을 난폭하게 누비는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는 읍읍, 소리를 내며 반항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어. 눈을 감고 히나타의 움직임을 따르던 카게야마는 이내 말캉한 감촉이 사라지자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눈을 뜨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바라본 히나타의 눈에서는 불꽃이 무서운 기세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럴 때엔 무슨 말을 하는 것이 되려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카게야마는 일단 입을 가만히 다물었다.
“너, 어제 대왕님 만났지.”
아, 그것 때문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려 입을 여는데, 히나타가 또 선수를 쳤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은 하지 마. 정확히 제가 하려 했던 말을 읊는 것에 카게야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묵묵하게 히나타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어 버릴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손이 조금 떨렸다. 저런 모습까지도 좋은 저도 참 우습다는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카게야마. 낮은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것에 카게야마는 재차 어깨를 움찔했다.
“너는 내 거야.”
사납게 속삭이는 말에 카게야마는 또다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제 연인의 소유욕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동시에 소름이 끼치도록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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