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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HQ

[카게른] 조각글 백업




[아카카게스가] 동거

 


아카아시 씨, 샴푸가 떨어졌습니다.”

 

샤워를 한다며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물소리가 끊기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대뜸 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며 하는 말이 저 모양이다. 아카아시는 머리만 거실 쪽으로 디밀고 파란 눈을 끔벅이는 카게야마에게 무어라 답해주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가져다 줄 테니까, 좀만 기다려. 간신히 말하고는 베란다 창고 쪽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차 붙드는 것은 스가와라의 목소리였다. 카게야마, 씻다 말고 뭐 해? 머리를 말리던 수건을 머리에 대강 얹고는 방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꼴을 보아하니, 분명 다 듣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카아시는 카게야마에게 보이지 않게 매서운 눈을 하고 스가와라의 등 뒤를 쏘아보았지만, 스가와라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아카아시를 향해 되려 웃어 보였다. 아카아시, 가만히 있어도 돼. 내가 가져다 줄 테니까. 여유로운 어조가 도리어 묘하게 속을 들끓게 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카아시는 경악에 차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가와라 씨?”

 

카게야마에게는 손짓을 해 안쪽으로 물러나게 해 놓고서는, 대범하게 욕실로 걸어 들어가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놓고서는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심상치 않아 그는 저도 모르게 살며시 욕실 앞으로 다가가 문에 귀를 댈 수 밖에 없었다. 웅웅 울리는 덜컥이는 소리와, 스가와라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 카게야마가 태연하게 되받는 소리가 뒤섞여 도통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스가와라 씨, 설마 선수를 치려는 건가? 분명 카게야마가 먼저 다가오기 전에는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정작 카게야마는 알지 못하는, 그를 사이에 둔 계약 비슷한 약속을 상기한 아카아시는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그럼 나도 어겨도 되는 건가? 어떡하지? 온갖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아카아시는 이마를 한 손으로 짚고 아직도 축축한 앞머리를 높이 쓸어올렸다.

 

“…여기서 뭐 해, 아카아시?”

 

눈을 감고 생각을 고르는데,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맑게 귓가로 스며들었다. 아카아시는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허둥지둥 목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닫힌 문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를 바라보는 스가와라가 눈에 들어왔다. , 뭐 하신 겁니까, 스가와라 씨?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묻는 말에 스가와라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니, 욕실 장에도 샴푸 남은 게 하나 있었거든. 그거 꺼내 주고 왔는데?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하는 말에 아카아시는 그제야 안심하려다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의 조각을 붙잡았다. 저기, 그런데, 스가와라 씨.

 

그러면, 지금 카게야마 몸을

 

이미 대답을 알기에 물을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둥실거리며 유영했다. 아카아시는 주먹을 꾸욱 쥐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스가와라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래, 내가 한 발 뒤쳐졌다, 이거지. 자조하듯 피식 웃는 소리는 끝끝내 스가와라의 귓가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쿠니카게] 후회

 


비가 와, 쿠니미.”

 

카게야마는 베란다 밖으로 상체를 반쯤 빼고는 위태롭게 난간에 기대었다. 들어와, 카게야마. 한숨처럼 내쉬는 말에도 카게야마는 꼼짝 않고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투둑, 투둑, 한 두 방울씩 드물게 떨어지던 비는 이내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되었다. 머리칼이며 어깨가 온통 축축하게 젖어버리고 만 후에야 카게야마는 결국 안으로 몸을 들였고 쿠니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건을 가져다 카게야마의 머리 위에 얹었다. 옷 다 젖었네, 갈아 입고 나와. 다정하지 못한 투로 하는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내저었다. 조금, 조금만 이따가. 투정하듯 바닥에 주저 앉아서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보던 쿠니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등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 이러다가 감기 걸린다. 짐짓 엄한 어조로 하는 말에도 카게야마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는 심정으로 쿠니미는 수건을 바투 붙잡았다.

 

쿠니미, 있잖아.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퉁명스런 말투와는 달리 머리를 털어 말리는 손짓은 제법 다정했다. 큰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가볍게 물기를 털어내는 손짓에 나른해진 모양인지 카게야마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비가 오는 창 밖을 무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요히 침묵을 지키던 카게야마가 재차 입을 열었다. 쿠니미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왜 하필, 비 오는 날에 떠났을까.”

 

무슨 옛날 드라마 주인공 같아서 싫어. 주어가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물음 같지 않은 물음. 그 뒤에 덧붙인 말은 본심이 아님을 쿠니미는 알고 있었다. 비가 올 때마다 그를 떠올리게 되니까 싫은 거잖아, 정정하고 싶었지만 되려 비참해지는 지름길처럼 느껴져 벌어진 입술을 앙다물고 머리를 말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카게야마는 그러나 입을 다물 생각이 없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쿠니미, 나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쿠니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카게야마는 주저하지 않았다.

 

나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머리를 말리는 손이 멈추었다. 쿠니미는 아득히 침잠하는 의식 속에서 눈을 감았다. 너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아. 작게 중얼거린 말은 속삭임이었고 거의 호흡에 가까웠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스스로에게 말하듯 달싹이는 입술은 이내 아무에게도 가 닿지 않을 말을 토해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소나기가 잦아들고 있었다.

 

 


[오이카게마츠] 질투

 


토비오쨩, 나한테 무슨 할 말 없어?”

 

오이카와의 맞은 편에 앉아 열심히 파르페를 먹고 있던 카게야마는 느닷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입술을 댓발 내미는 것은 카게야마의 버릇인데, 어째 오이카와가 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빛부터 굳게 낀 팔짱까지, 어딜 봐도 심각하게 삐친 사람의 태도였지만 카게야마가 눈치를 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입가에 아이스크림을 조금 묻히고 멀뚱멀뚱 저를 보며 묻는 제 연인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얄미워 오이카와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몰라서 물어, 토비오? , 몰라서 묻는 겁니다만순진한 건지 뭔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카게야마의 태도에 오이카와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정말, 토비오쨩은 내가 아니면 누가 데려갔을까. 그러나 그 생각을 머릿속에 걸자 마자 아까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나 지금 되게 진지하게 묻는 건데.”

“? 말씀하세요.”

 

, 저 물음표. 오이카와는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맛층이랑 무슨 얘기 했어?”

맛층, 마츠카와 씨요?”

 

뭐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카게야마를 보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사랑스럽다는 생각과 답답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 네 애인 귀엽더라- 마츠카와가 아까 제게 던졌던 말이 영 심상치 않았다. 제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무슨 수작이라도 걸었을 까 문득 걱정이 되어 도통 참을 수가 없었다. 오이카와는 침착을 모르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카게야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두근, 두근, 잔뜩 긴장한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다물렸던 카게야마의 입술이 이윽고 천천히 열렸고, 오이카와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별 말은 안 했는데, 손을 좀 잡으셨습니다.”

뭐어?”

 

태연한 얼굴로 엄청난 발언을 뱉은 카게야마의 면전에 오이카와는 경악을 내어놓았다. 맛층, 안 그래도 심상치 않았어. 분명 토비오한테 뭔가 생각이 있는 거야. 어떡하지? 어떡해? 마음이 내지르는 당황의 비명들 사이로 오이카와는 간신히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또 파르페에 집중을 하는 모습이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오이카와는 입술을 짓씹으며 주먹을 꾸욱 쥐었다.

 

맛층, 내일 보면 죽을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