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카게 전력 주제 '너를 위해' 로 참여했습니다.
*영화 인셉션 au입니다.
*실제 죽음은 아니나 꿈 속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시야가 잘게 흔들렸다. 쿠니미는 떨리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눈부신 빛과 화염과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이 빙빙 돌았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풍경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카게야마의 뒷모습이었다. 카게야마, 쿠니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름은 그 주인에게 들리지 못했다. 금고를 향해 무작정 뛰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박히자 쿠니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카게야마! 크게 외친 이름을 놓쳤을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쿠니미는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저 고집쟁이, 멍청이, 바보. 잇새로 속사포처럼 비난이 쏟아졌으나 거칠지는 않았다.
카게야마는 어느새 금고 앞에 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여전히 폭발의 섬광이 팡팡 터져나와 시선이 곧게 뻗기 힘들었다. 부신 눈을 깜박이며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등을 응시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금고를 열어낸 카게야마는 그 안의 문서들을 다급하게 챙겼다. 흐트러진 종이 몇 장에 반쯤 고개를 박고 읽어내던 카게야마는 이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쿠니미, 쿠니미! 종이들을 손에 쥐고 흔들며 제 이름을 외치는, 천진함에 가까운 표정을 한 카게야마를 바라보던 쿠니미는 이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카게야마의 몸 위로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입을 막은 손을 천천히 뗀 쿠니미는 방금 전까지 카게야마가 서 있던 곳에 자리한 건물의 잔해 더미를 바라보았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카게야마. 허망하게 뱉어진 말에는 아무런 기력이 없었다. 비틀거리며 잔해 쪽으로 걸어가는 쿠니미의 손은 황급히 제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왼쪽, 오른쪽 바지 주머니를 지나 가슴팍의 안주머니까지 들어간 손은 벌벌 떨며 푸른 보석이 박힌 삼각형의 브로치를 잡았다. 제발, 제발... 입 모양이 그려내는 심정은 복잡하고도 절박했다. 그리고 브로치를 주먹 안에 넣어 쥐려던 순간,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쿠니미, 왜 바로 머리를 쏘지 않은 거야!”
여전히 시야가 불분명했다. 쿠니미는 흔들리는 시선을 간신히 눈앞의 형체에 고정시켰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비죽 올라간 눈꼬리와 곧은 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퉁하게 튀어나온 입술까지 확인한 그는 다급히 눕혀진 몸을 일으켰다. 두리번거리던 시선은 이내 왼쪽 팔목에 꽂힌 주사바늘에 가 닿았고 쿠니미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뽑았다. 안심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팔목의 바늘자국을 살피던 쿠니미는 이내 고개를 털어내듯 젓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이럴 때가 아니야. 얼른 정리하고 빠져나가야 해. 여전히 꿈에 빠져 있는 표적을 잠시 바라보던 쿠니미는 그의 손목에 박힌 바늘도 뽑아낸 후 빠르게 기계를 정리했다.
“쿠니,”
“잔소리는 나중에. 일단 빠져나가자.”
한참 먼저 꿈에서 벗어나 있던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저지했다. 패시브를 정리해 손에 쥔 쿠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방을 나섰다. 카게야마는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쿠니미를 따라 방을 나서는 멤버들을 조용히 뒤쫓았다. 닫힌 방문의 숫자는 아까의 비밀번호였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표적은 눈을 떴다.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남자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를 올릴 예정입니다.”
“좋네. 그쪽에서도 생각보다 수확이 커서 만족하겠어.”
카게야마의 브리핑이 끝나자 오이카와는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다 추출해내다니, 토비오쨩이 웬일이야? 농처럼 던지는 말에 카게야마는 입술을 빼물고 대답했다. 저도 프로예요, 오이카와 씨. 제법 당찬 어조에 오이카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 잘 했어. 칭찬이 떨어지자마자 카게야마는 아까의 뾰로통함을 지워내고 기분 좋게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쿠니미는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딱딱하고 찬 금속이 지문을 스쳤다. 삼각형 모양의 브로치 한 가운데에 박힌 푸른 보석에 검지 끝을 올리고 돌리던 그는 오이카와가 해산을 외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뢰 수행 때문에 며칠을 비웠던 방에는 쎄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쿠니미는 이상하게 여전히 눈앞이 어지러워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손으로 몇 번 눈을 비비기까지 하고서야 패시브를 보관하는 금고를 연 쿠니미는 텅 빈 금고와 제 손에 들린 패시브 가방에 차례로 시선을 두었다. ...해 볼까. 느닷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그는 자조하며 가방을 금고 안으로 밀어넣었지만 이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표정으로 그것을 다시 꺼내들었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패시브를 한 쪽 구석으로 밀어놓고 무너지듯 드러누웠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기묘한 생각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두려웠다. 더 이상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느낄 수 없었다. 누구보다 예민한 현실 감각을 가졌다고 자신하던 그였으나 이상하게 요즘은 꿈이 현실 같았고 현실이 꿈 같았다. 물론 토템을 만져 보면 금방 해결이 될 문제였다. 그러나 그가 숨기고 있는 가장 큰 비밀이자 고민은, 그가 점점 꿈속의 토템과 현실의 토템 간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그런 일을 겪었다는 드리머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토템을 가지기를 포기했던 이가 있었을 뿐, 멀쩡한 토템을 가지고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는 없었다.
그는 이유를 알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그 일이 시작되었는지 알아내려 수도 없이 기억을 추적했고, 심지어 패시브를 통해 홀로 제 무의식 속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알 수는 없었다. 아무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탐험해도 그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찾아지지 않았다. 멤버들의 괜한 걱정을 살 까봐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큰 절망과 혼란에 빠졌다. 암흑 속을 홀로 걷는 걸음은 위태로웠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휘청이는 발자욱들은 칼날처럼 정신을 베어들어갔다.
그가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정말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의뢰를 위해 설계를 끝낸 꿈을 추출을 맡게 될 카게야마에게 보여주던 와중, 혼란스러운 그의 정신을 반영한 것인지 길가에 느닷없는 장애물이 나타났다. 돌부리 정도의 별 것 아닌 것이었다. 그러나 완벽을 기하기로 유명한 쿠니미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카게야마가 걸려 넘어지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무릎이 깨져 피가 나는 카게야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중에 두 사람은 꿈에서 깨어났다. 괜찮아, 사과에 대한 답은 현실에서 내어졌다. 쿠니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의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린 것은 공포였다. 카게야마 토비오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
카게야마는 추출사였다. 가장 위험에 빠지기 쉬운 위치라는 뜻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늘 제일 먼저 표적이 되었고 제일 크게 다쳤으나 보통 제일 나중에 죽었다. 모든 고통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존재였다. 게다가 그의 사전에 대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늘 완벽하게 모든 정보를 추출해내고 싶어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이 다치기도 했지만, 그는 어차피 꿈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무덤덤하게 대꾸하고는 했다. 그리고 쿠니미 아키라는, 그런 카게야마 토비오를 사랑했다.
말 그대로였다.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마음에 깊이 품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역시나 알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은 상당히 진지했고 그만큼 비밀스러웠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그러나 아무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어렵게 뿌리를 내린 만큼 쉽게 자라났다. 쿠니미는 홀로 앓으며 그것을 숨기느라 아등바등했다. 그러나 그것이 카게야마에 대한 걱정으로 번져나가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그는 이제 꿈에서 그가 다치거나 죽을 때마다 두려워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제가 그를 죽여야 할 때에는 특히 더 두려워했다.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것이 그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된 이유였다. 그는 그것이 바보같다고 생각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생각에서 빠져나온 그는 몸을 일으켜 패시브를 가까이 잡아끌었다. 뚜껑을 열고 호스를 꺼내 바늘을 팔목에 꽂아넣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꿈에 들어가는 횟수를 늘여보면 그 경계를 파악하는 훈련이 되지 않을까, 어리석어 보이는 동시에 현명해 보이는 생각이었다. 한, 오 분 정도만 들어갔다 올까. 생각하며 버튼을 눌러 시간을 조정한 그는 이내 약을 주입시키는 가운데의 둥근 버튼을 꾹 눌렀다. 순식간에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다시 한 번 상체가 쓰러지듯 눕혀졌다.
아무것도 없는 흰 대리석 바닥이 끝없이 펼쳐졌다. 여긴 정말, 지독하게 현실성이 없네. 제 무의식이 불러낸 공간에 헛웃음을 웃던 쿠니미는 이내 나타나는 인영에 피가 차게 식는 것만 같았다. 아, 네가 왜 여기에. 까맣게 윤이 나는 머리칼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흩날렸다. 파란 눈이 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살짝 휘어지는 것에 쿠니미는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으나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쿠니미는 마침내 달리는 것을 포기했다. 헉헉대는 가쁜 숨을 내쉬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자 그가 다시 웃었다.
“쿠니미, 내가 진짜일까?”
아니야, 너는 환상이야. 내가 아는 카게야마는 그런 걸 물을 줄 몰라.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웃지도 않아. 답은 입 안을 가득 메웠지만 차마 밖으로 내어지지는 못했다. 대신 쿠니미는 손을 뻗어 어느새 뒷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묵직한 무게의 권총을 꺼내들었다. 팔을 주욱 뻗어 제 투사체인 카게야마의 왼쪽 가슴에 총구를 겨눈 쿠니미는, 그러나 손을 조금 떨 수밖에 없었다. 카게야마의 환상은 그의 심정을 모두 안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쿠니미. 불쌍한 쿠니미.
“이게 현실이면 어쩌려고 그래?”
목소리는 텅 빈 공간을 맴돌며 증폭되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저으며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환상은 또다시 눈을 접어가며 예쁘게 웃었다. 그래, 쿠니미. 나를 죽여. 너를 위해. 중얼거리는 말의 끝은 총성이었다. 꽃잎처럼 환상의 조각들이 날렸다. 쿠니미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총이 대리석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을 진정시키지 못한 쿠니미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 나를 위해. 나를, 위해. 총은 다시 주인의 손에 잡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관자놀이에 가져다 댄 쿠니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너를 위해. 내가 언젠가 죽일지도 모르는 너를 위해.
총성이 한 발 더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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