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전력 70분 주제 '아이돌'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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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닥에서 일하기엔 나이가 좀 있지 않나?”
상냥하지 못한 말은 그가 방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귓가에 울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띄워놓던 거짓 미소가 잠시 흔들리다 되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가뜩이나 떨리던 목소리는 애써 가다듬어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남자는 소파 등받이에 깊게 묻었던 등을 펴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말없이 술루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남자는 이내 다리 위에 걸쳤던 팔을 들어 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더, 가까이 와 봐. 입가에는 천진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술루는 그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였다. 아니, 애초에 그가 그 방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는 안전하지 못했다. 그는 포식자의 굴 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목숨을 구걸하는 한 마리의 피식자였고 그에게 남은 것은 복종뿐이었다. 그는 발을 옮겨 남자-제임스 T. 커크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커크는 유명인사였다. 표면적으로 그는 매일같이 신문에 이름이 실리는 세계적 대기업 엔터프라이즈 사의 공공연한 후계자였다. 능력만큼 출중한 외모도 그의 유명세에 한몫했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비밀스레 떠도는 뒷세계의 소문들 속에서 그는 광부이자 보석 세공사였다. 연예계의 뜨지 못한 원석들을 캐어 보석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는 인물이라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공짜일리는 없었다. 그것이 신인 아이돌 그룹의 리더 술루가 그의 앞에 불려온 이유였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 모든 사실을 곱씹던 술루는 순간 마주친 새파란 두 눈동자에 어깨를 떨었다. 여유가 넘치는 표정과는 달리 눈빛만은 유독 날이 서 있었다. 사냥감을 수색하는 눈길에 술루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입술, 그러면 안 되지. 얼굴로 벌어먹고 사는데.”
화들짝 놀라 입을 헤 벌려버린 술루의 볼에 커크가 손을 얹었다.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숙인 술루는 더욱 가까워진 커크의 얼굴에 어쩔 줄 몰라 눈동자를 굴렸다. 피부도 좋고, 나이에 비해 상당히 어려 보이네. 중얼거리며 제 얼굴 이곳저곳을 훑는 눈빛은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았다. 칼에 스친 것 마냥 시큰거리는 통증이 환각처럼 일었다. 커크는 다른 손을 뻗어 술루의 입술에 얹었다. 저런, 피가 조금 나는데. 자칫하면 걱정처럼 들릴 만큼 다정한 말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잠시 아까 물어뜯어진 부분을 매만지던 커크는 술루를 제 쪽으로 더 가까이 끌었다. 기본이 안 되어 있군. 단어들은 말이라기보다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숨소리마저 선명할 거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키스, 잘 해?”
“네?”
“키스 잘 하냐고.”
갑작스런 질문에 멍한 표정을 짓는 술루를 보며 커크는 잇새로 실소를 흘렸다. 못 해도 상관없어. 나직하게 내뱉어진 말은 공기에 먹먹하게 먹혀들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술루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숨을 들이켰다.
내가 잘 하거든.
말과 동시에 맞닿은 입술은 부드러웠다. 혀를 내어 입술의 갈라진 틈을 오가다가 피가 고인 자욱을 훑었다.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 안으로 침투한 것은 제법 부드러웠다. 저절로 감긴 눈이 마지막으로 포착한 것은 예의 그 푸른 홍채였다. 보석 같은 푸르름이라 생각하며 술루는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의무감에 따라 움직이는 혀는 능숙한 커크의 솜씨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세 숨이 차올랐다. 코로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만 같았다. 손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그만, 이라는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던 그 때, 천천히 숨이 멀어지고 코가 슬쩍 스쳤다. 검은 눈동자가 다시 빛을 보았다.
“재미없게 생겨서는, 아예 안 해본 건 아닌가봐.”
하긴, 그 나이 먹고 아무런 경험도 없기는 힘들지. 웃으면서 말하는 커크의 눈동자는 여전히 술루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다시 제게로 다가오는 얼굴에 술루는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아서야 그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오늘의 진도는 여기까지, 초면에 자자고 할 만큼 매너 없지는 않거든. 말의 내용과 달리 형식은 지나치게 달콤했기에 술루는 순간 아찔하게 머릿속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다시 술루의 볼에 손을 얹은 커크는 엄지손가락을 뻗어 그의 반짝이는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특히, 한두 번 볼 사이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새카만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본체만체한 그는 또다시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한두 번 보고 말기에는 너무 내 취향이라, 미스터 술루.”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술루의 볼을 몇 번 가볍게 두드린 그는 팔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봐. 새카만 수트 자켓의 깃을 정리하며 건네는 말에 술루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윙크까지 남기는 모습에서 아까의 맹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 옆을 스쳐 지나는 기척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다정한 듯 방탕한 왕자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아보았다. 본성을 가리고 있는 자의 모습은 더없이 익숙한 것이었다.
아아, 조금 다른 의미의, 동류를 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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