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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D/HP

[시리무/레리무] 무제





*커플링의 탈을 쓴 블랙 형제 얘기하는 글
*네이비(@hqultramarine2)과 푼 썰의 일부를 글로 풀었습니다. 사랑해요 네이비님♡♥♡♥



 

 

설명해 봐, 리무스 루핀.”

 

어떻게 된 거야? 저를 복도로 끌고 나와서는 으르렁대듯 묻는 시리우스의 모습에 리무스는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야? 한숨처럼 뱉는 반문에 짜증이 난 기색이 여실했다.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은 그 감정을 읽지 못할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지만, 시리우스는 사납게 입가를 비죽였다. 금방이라도 이를 세우고 달려들 것만 같은 표정은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은회색 눈동자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재미있는 광경이라고, 레귤러스 블랙은 생각했다.

 

네가 왜 저런, 저런 녀석이랑 같이 있는 건데. 생각이 있긴 한 거야?”

 

리무스의 입가에 상황에 맞지 않는 희미한 미소가 덧그려졌다. 은회색 소용돌이는 무언가를 집어삼켜 버릴 듯 거세진다. 생각이 있긴 하냐니. 리무스는 느릿하게 그에게 던져진 질문의 끝자락을 되풀이했다. 재미있네, 시리우스. 그 말은 보통 내가 했던 것 같은데.

 

불안이 시리우스의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천천히, 천천히, 척추를 하나 하나 더듬고, 목을 조르려다 머리를 감싼다. 여전히 맹렬한 저 소용돌이가 집어삼킬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던 레귤러스는 정답을 알았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그 형제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나눈 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색만은 온전히 같았다.

 

우습네, 형제를 낀 치정극이라니. 짧게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레귤러스는 오히려 표정을 굳힌다. 치정 싸움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그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의 아슬아슬함에 순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리우스, 당신과 내가 평범한 형제 사이여서, 당신과 내가 틀어진 이유가 단순히 같은 사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면, 그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잠시 무너질 뻔 했던 은회색 평온은 순식간에 다시 회복된다. 어쩜 이렇게 잠시만이라도 닮을 수가 없을까요, 조용히 읊고는 흘려보낸다. 헛된 생각, 허무한 상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런 것들은 때로 안개처럼 뿌옇게만 보이겠지만, 깊이 들어가는 순간 날카롭게 변해 심장을 찔러 올 지 모른다는 것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이제 거의 윽박지르듯 리무스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리무스, 저 녀석은 그 고귀하신 블랙이고, 게다가 슬리데린이야. 언제 그 사람의 편에 붙을 지 모른다고. 어쩌면 벌써 어둠의 마법에-

 

아아, 형님. 그 쯤 해두시는 게 좋겠네요. 형제, 라는 단어를 짓씹어 삼킨 레귤러스는 그제야 성큼성큼 걸어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리무스를 데리고 어딜 가시나 했더니만, 복도에서 이러실 줄은 몰랐네요.”

 

한없이 고요함에 가까운 미소가 순간 날카로워 보였다고, 리무스는 생각했다. 반면 시리우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레귤러스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레귤러스, 낮게 내뱉어진 이름에는 이상하게 울음 비슷한 것이 배어 있었다. 불안에 잠식당한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재미있다고, 레귤러스는 다시 생각했다. 정말, 재미있다고.

 

교양 없게 이게 무슨 짓이에요, 시리우스.”

 

리무스도 곤란해하잖아요. 은근한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덧붙인 말에 리무스도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뗀다. 시리우스가 끼어들 틈은 한 치도 주지 않은 채.

 

맞아, 복도에서 이런 소란은 안 돼. 감점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거야, 시리우스 블랙.”

 

연갈색 시선이 잠시 시리우스의 얼굴을 스치다가 잦아든다. 더 할 말 없으면, 난 가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냉정한 체 뱉는 말이 떠나는 리무스의 뒷모습에 그림자마냥 달라붙는다. 조금 쿵쾅대는 발소리와 함꼐 멀어지는 갈색 머리칼과 검은 망토자락을 두 쌍의 은회색 눈동자가 응시했다.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닮지 않은.

 

먼저 입을 뗀 것은 레귤러스였다.

 

고귀하신 블랙, 이요.”

 

질문도 무엇도 아닌 말이 형제의 사이를 채웠다. 시리우스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로 레귤러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블랙이 아닌 것 처럼 이야기하네요.”

 

시리우스 블랙, 당신은 부정할 수 없이 블랙이에요.

 

생략된 수많은 단어들과 요란하게 몰아치는 감정 사이에서 레귤러스는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결국은 다시 이 이야기일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정말, 당신과 내가 평범한 형제였다면, 그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은회색 혼란이 마침내 가장된 평온을 집어삼켰다. 형제는, 닮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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