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5D/HP

[시리무] Black flower



*6학년 무렵의 이야기. 하나하키 병(짝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꽃을 토하는 병)에 걸린 리무스.



시리우스 블랙x리무스 루핀

Black Flower



느슨하게 묶은 새카만 머리칼이 연녹색 눈동자 안에서 휘날리며 춤을 춘다. 너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다. 은회색 눈동자가 네 눈 앞에 어른거리다 잦아들곤 재차 나타난다. 너는 또 한 번 눈을 깜박인다. 오뚝 선 날렵한 코가 스치듯 사라지고, 미소가 감도는 붉은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또 눈을 깜박인다. 지팡이를 장난스레 손 안에서 휘휘 돌리던 모습이 어느 새 너를 빤히 바라보는 모양으로 바뀌어 있다. 어디 아파, 무니? 투박한 다정함이 담긴 말에 너는 토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간신히 고개를 저은 너는 애처롭게 제임스를 바라본다.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모습을 눈에 담은 너는 빠르게 몸을 돌려 멀어진다.

 

어이, 무니!”

 

너를 부르는 목소리는 그의 것이다. 너는 못 들은 체 걸음에 박차를 가한다. 제임스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너는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는다. 그들의 시야에서 네가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너는 달리기 시작한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이 금방이라도 입술을 뚫고 폭발할 것 같다. 간신히 인적이 드문 화장실로 달려온 너는 아무 칸이나 열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우욱,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새카만 꽃잎들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나온다. 우욱, 우우욱. 뱃속부터 시작해 가슴과 목을 지나 끝이 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그 꽃들 사이로 네 눈가를 타고 흐른 눈물이 투둑 떨어진다. 속이 쓰려. 생각하며 너는 네 눈물에 이유를 붙인다. 속이 쓰려서 그래,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야.

 

영원히 끝이 없을 줄 알았던 검은 꽃의 폭포가 멎으면 너는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물을 내린 후 문을 열고 세면대에서 입을 헹군다. 입 안에 달라붙은 꽃잎 몇 장이 물에 젖어 추락한다. 너는 멍하니 세면대 바닥에 달라붙은 눅눅한 것들을 바라보다가 물을 튼다. 센 수압으로 터져나오는 물줄기에 꽃잎들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 내려간다. 저 깊은 곳에서 물에 잠겨버릴 꽃잎들처럼 너의 마음도 수몰되어 죽어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생각한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꾸욱 감았다가 떠 보면 거울 안의 네가 눈에 비친다. 너는 흔들리는 연녹색 눈동자와 조금 헝클어진 연갈색 머리칼, 하얗게 질리고 흉터가 진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문다. 싫어, 그만두고 싶어.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너 뿐이다. 너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긴다. 문득 그것이 그의 버릇이라는 것을 깨달은 너는 쓰게 웃는다.

 

바보같네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네가 마음 깊은 곳에 품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또 전혀 다른 목소리다. 너는 눈을 다시 감는다. 온통 암흑이다. 너는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는다. 레귤러스는 그런 네 등 뒤로 가까이 다가와 츳츳, 혀를 찬다. 너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고, 그도 네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알면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너와 그는 그렇게 정적 속에 가만히 서 있는다. 제대로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똑, ,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울린다.

 

그만두라고 말 하고 싶은데.”

 

그쪽도 그만두고 싶어할 거 아니까 그럴 수도 없네요. 덤덤하게 하는 말에 너는 눈을 뜬다. 거울 너머로 청회색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 다음엔 그와 너무나도 닮은 코를, 입을, 턱을. 그와는 달리 짧게 다듬은 머리카락을 마지막으로 너는 눈을 떼고 고개를 숙인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네게 레귤러스는 안쓰럽다는 시선을 잠시 던진다. 너는 그것을 모른 체 한다. 그는 한숨을 푸욱 쉬고는 어색하게 네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뗀다. 그것이 그 나름의 위로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너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든다. 거울 너머로 비치는 그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이만, 하고 몸을 돌린다. 천천히 휘날리는 망토 자락을 응시하던 너는 그만 돌아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물을 조금 묻혀 단정히 정리하고 비투름하게 돌아간 넥타이를 고쳐 맨 너는 억지 미소를 연습한다. 제법 자연스럽다. 입꼬리가 살짝 떨리는 것 정도는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너는 너를 기다릴 사람들에게로 발걸음을 돌린다.

 

왜 이렇게 늦었어, 무니!”

 

밝게 인사하는 제임스는 너에게만 보이게 눈을 두 번 깜박인다. 그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너희 나름의 신호다. 너는 안심하며 연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안, 화장실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더라고. 가짜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응대한 너의 시선은 제임스를 지나 그를 향한다.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네 머리에 얹고 헝클어트린다. 하지 마, 패드풋! 괜히 짜증을 부리듯 소리를 치지만 너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의 손이 닿는 온기가 느껴질 때 마다 파드득 전기가 튀고 파르르 가슴이 떨린다. 너는 고개를 숙여 그의 손에서 벗어나고는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아쉬움에 타박을 낸다. 아쉬워하면 안 돼, 그만두기로 했잖아. 그러나 쿵쾅쿵쾅 뛰는 심장의 열기는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무니,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말을 꺼내고도 변명을 생각하지 못한 듯 제임스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우리 그, 마법의 약 시간에 조 짜는 거 때문에 반장님께 여쭤볼 게 있어서. 이내 제임스가 대는 되도 않는 핑계에도 그는 크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둘이서만 비밀 얘기라니, 웜테일이랑 난 뭐가 돼? 단지 그가 장난스레 던지는 말에서 너는 서운함을 감지해 보이지 않게 잠시 손을 떤다. 그러나 그는 금방 푸스스 웃으며 제임스와 너를 보낸다. 빨리 얘기하고 와, 난 웜테일이랑 비밀 얘기 할 거니까. 너는 영 찝찝한 기분이지만 일단은 너의 손목을 잡아끄는 제임스를 따라간다.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나서도 제임스는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무니,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정말 괜찮아?”

 

너는 잠시 움찔하다 그가 무슨 말을 또 꺼내려고 하는 것인지 순식간에 알아챈다. 괜찮아,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지만 제임스는 여전히 영 미심쩍다는 표정이다. 찌푸려진 미간에 담긴 감정이 속상함이라는 것을 아는 너는 재차 말한다. 정말, 괜찮다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뗀다.

 

시리우스한테 진지하게 내가 잘 얘기해 볼 수 있어. 원한다면 얼마든지 너랑 둘이서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너는 다시 한 번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야, 됐어. 정말 괜찮아. 너의 반응에 제임스의 표정은 점점 더 울상이 된다. 그래도, 나는 내 소중한 친구들이 이렇게 어색해지는 건 싫단 말이야.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이 날카로운 사금파리가 되어 심장에 꽂힌다. 나도 어색해지는 건 싫어. 너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래서, 이러는 거야.

 

내가 고백이라도 하면, 아니, 시리우스가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하면우리는 더 이상 친구로 남을 수 없어.”

리무스.”

 

잡아채듯 너를 부르는 목소리에 너는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야, 안 돼. 단호하게 말하는 네게 제임스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빛의 시선을 주기만 한다. 결국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너는 미안, 작게 중얼거린다. 그는 손을 들어 제 뒷머리를 몇 번 흐트러트리더니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는 또다시 가장된 미소를 입가에 띄운다. 너무 침울해하지 말고. 내가 금방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자신 있는 투를 꾸며 내어 말하자 제임스가 너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거린다.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는 또 한숨을 푸욱 내쉰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말꼬리가 흐려진다. 너는 아까와는 반대로 제임스의 손목을 잡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이끈다.

 

비밀 얘기는 많이 하셨나, 친구들?”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뱉자 그가 웃음을 터뜨린다. 너는 따라 웃으며 괜스레 피터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식사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슬슬 가 볼까? 그가 하는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움켜쥐는 시늉을 한다. 배고프다, 빨리 가자. 네 시늉이 제법 우스웠는지 그는 또 깔깔 웃고는 네 등을 툭툭 친다. 능청이 늘었네, 친구. 너는 속이 재차 쓰려왔지만 애써 웃음을 되돌려준다. 나도 한 능청 한다고, 친구? 얼굴 근육이 온통 굳어져 아플 지경이었지만 너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계속 웃음을 낸다. 연회장으로 걸어가는 네 사람의 뒤로 그림자처럼 남은 감정에는 너의 서글픔이 잔뜩 서려 있다.

 

혼자 이렇게 토해내고 누르고 참고 삭히다 보면 이 아픔에도 끝이 있지 않을까, 너는 그리 생각하며 보이지 않게 눈을 천천히 깜박인다. 꽃처럼 검은 어둠이 눈 앞을 스치다 사라지고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깜박, 깜박.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것은 그의 뒷모습이다. 세상이 온통 그다. 너는 괴로운 마음을 참으며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뜬다.

 

아주 느리게, , .




'2.5D > H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리무] 암흑과 빛과 살해에 대하여  (0) 2017.02.05
조각글 백업  (0) 2016.07.27
[시리무/레리무] 무제  (0) 2016.06.10
[제레귤] Dejavu  (0) 2016.04.22
[시리무] 무제  (0) 201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