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술루 합작에 참여한 글입니다.
꿈을 꾸었다.
꿈은 아득한 사막에서 피어올랐다. 눈이 부신 태양 아래로 더위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열기가 연기마냥 솟아올랐다. 자칫하면 눈에 보일 것만 같은 선명한 더위에 나는 걸음을 옮기다가도 발목을 붙잡혔고 비정상적으로 두근대는 심장은 박살날 듯 움켜쥐어졌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구원을 찾는 마음만이 달음박질했다. 죽는 거다, 이 사막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는 거다. 되뇌이던 말은 이내 잘게 부수어져 모래처럼 입 안에서 바스락대었다. 온통 갈라지고 튼 입술이 비죽 튀어나와 물을 찾았다. 목이 탔다. 정말 말 그대로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시퍼런 불꽃이 기도를 턱 막았다가 끈적하게 흘러내려 마침내 속을 뒤집고 태우고는 새카만 재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 감각은 어떻게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목보다 더 뜨거운 불꽃을 안은 것은 마음이었다. 감정들은 이미 다 부스러지는 잔해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고 나는 그 안에서 소중한 것들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였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의 잔상들 중에는 뚝뚝 끊겨버린 것 마냥 기억이 사라진 부분들이 존재했고 나는 그것이 영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망각이 축복인지 저주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저 지독한 고통으로 신음하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선택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막의 낮이었다.
그 사막에는 밤이 오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체 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안의 것들이 밤이 오면 온전히 얼어붙어 무너질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에서였다. 지독한 현실의 낮을 살아가고 마침내 밤이 오면 나는 다시 눈을 감아 낮으로, 낮으로 향했다. 그러나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밤이 아니었고 실은 낮도 아니었으며 다만 당신이었다.
아아, 당신. 당신의 생각을 하면 나는 조금 울고 싶어진다. 눈부시던 여름날의 19시 27분. 노을의 탄환이 박힌 시계가 똑딱이며 가는 중에 선고되었던 당신의 죽음 앞에서 나는 차마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고 눈을 뜨면 당신의 환영이 보였다. 당신은 죽지 않았다. 히카루 술루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기도처럼 중얼거리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의 열기 속에서 데워져 증기처럼 눈앞을 뿌옇게 메웠다. 틱, 틱, 틱, 낡은 선풍기는 불안한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돌아갔으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기는 여전히 덥고 무거웠다. 나는 더위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 사막의 꿈은 그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끝이 없는 공포와 끝이 없는 더위와 끝이 없는 울음을 삼키며 걷고 또 걸었다. 왠지 그곳에 당신이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이 죽었던 날을 온통 휘감은 그 더위 안에 당신도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을까, 미련한 집착이었을까. 나는 답을 바라지 않는 길을 걸으며 당신을 찾아 헤매었다. 사막의 시계는 한낮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꿈은 언제나와 같았다. 작열하는 더위 사이로 나는 걷고 또 걸으며 고통을 먹고 절망을 마셨다. 바닥만을 보고 걸으며 발에 쓸리는 모래들의 감각이 낯설지 않음에 조금 슬퍼하는 도중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당연히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 끝없는 모래밭 대신에 멀지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까만 머리칼로 덮인 뒤통수에 나는 문득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녕, 내가 찾던 사람.
작게 중얼거린 말은 당신에게 닿지 못하고 흩어졌다. 언어의 형태를 잃은 소리가 열기가 짙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러자 느닷없이 해가 천천히 제 자리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보랏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노을을 마주하던 당신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당신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암흑을 지켜보다가 눈을 깜박였다. 순식간에 내려앉은 어둠은 당신의 얼굴도 물들였다. 온통 까맣게, 까맣게 얼룩진 모습에서 나는 애처로이 당신의 두 눈동자를 찾아 헤매었지만 밤은 끝끝내 나를 막아섰다. 살을 에는 추위가 몰려왔다. 나는 마음마저 얼어붙는 것 같다고 느끼며 느릿하게 무너져 내렸다. 당신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어둠이 되어 묻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찾아온 무더위의 끝에서 나는 울지 못했다.
사막의 시계가 종을 울렸다. 19시 27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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